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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의 꿈과 저우샤오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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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의 중국 이야기) 중국이 올해엔 위안화를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 통화바스켓에 편입시킬 수 있을까요. SDR바스켓은 현재 달러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4개 통화가 각각 41.9%, 37.4%, 11.3%, 9.4%의 비율로 구성돼있습니다. 위안화의 SDR바스켓 편입은 국제통화체제에 큰 의미를 지닙니다. 위안화가 SDR바스켓에 편입될 가능성과 그 것이 국제금융계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지난 29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폐막한 미국 독일 등 주요7개국(G7)재무장관회의에서 SDR 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하는 데 합의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위안화 편입에는 기술적인 문제도 포함되기 때문에 작업을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단서가 붙긴 했습니다. 앞서 지난 26일엔 IMF가 보고서를 통해 “위안화는 더 이상 저평가된 통화가 아니다”고 밝혔지요. 위안화의 SDR 바스켓 편입에 총재까지 나서서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IMF의 최근 행보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IMF는 11월 회의에서 SDR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할 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2010년에도 IMF는 긍정적이었지만 IMF 의사결정의 거부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반대 등으로 위안화의 SDR편입이 무산된 적이 있는 사실을 들어 중국이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미 상원은 최근 환율조작국으로부터 제품을 수입할때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만큼 중국의 통화정책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자본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다 위안화가 국제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게 높아진 점 등을 들어 이번엔 SDR의 5번째 통화로 편입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중국 당국은 최근 홍콩과 상하이의 투자자들이 상대 펀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데 이어 중국 개인들의 해외 증시투자 허용 방안도 금명간 발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1-4월 아시아태평양지역 국가들이 중국(홍콩 포함)을 상대로 한 거래(무역과 투자)에서 위안화를 결제통화로 사용한 비중이 31%로 2012년 4월의 7%에 비해 크게 높아졌습니다.미국 달러 비중은 같은 기간 21.7%에서 12.3%로 줄었습니다.아태 지역 26개국 가운데 위안화 결제비중이 10%가 안되는 나라는 2012년만해도 19개국에 달했지만 올들어 9개국으로 줄었습니다.

이를 두고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들은 지난해 11월 시작된 후강퉁(상하이 홍콩 증시간 교차매매)에 이어 외국인기관들의 중국 채권투자 증가,역외 위안화청산 결제은행 지정 확대 등의 정책효과가 크다고 분석했습니다.

중국은 위안화의 SDR바스켓 편입을 추진하면서 SDR의 기능 강화를 주문해왔습니다.SDR의 기능 강화가 국제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위안화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달러 기축통화에 대한 문제점이 불거지자 중국은 이 같은 논리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에 비해 다소 조용한 방식으로 SDR의 역할 강화론을 내세우는 전략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 31일 펴낸 보고서에서 소개한 인민은행 금융연구소의 ‘국제통화체제 개혁에 관한 초보적 구상'이라는 보고서의 내용이 대표적입니다.

인민은행 보고서는 “SDR을 확충해 안정적인 글로벌 유동성 공급 통로로 육성해 기존의 국제체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수년간 글로벌 유동성 부족현상이 나타나면, 이는 위안화의 국제화를 촉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습니다. "위안화 국제화는 전 세계 무역 및 투자에 필요한 유동성 공급을 보완할 수 있으며, 이는 국제통화체제의 안정을 유도해 기존의 기축통화국에도 이익이 될 것이다"고 설명합니다.

시계를 5년여전으로 되돌려보지요.2009년 3월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는 인민은행 웹사이트에 특정국에 속해있는 기축통화(달러를 암시)의 문제를 적시하고 슈퍼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글을 올립니다.그 예로 든게 SDR입니다.그해 6월 인민은행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슈퍼통화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합니다. “특정 주권국가의 화폐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것은 결함이 많은 만큼 특정 국가와 결부되지 않은 새 기축통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이런 새로운 슈퍼 통화만이 장기적으로 국제 기축통화로서 안정적 가치를 유지할 수 있고, 국제사회의 위기대응 능력을 키워 국제 화폐금융체제의 안정을 지킬 수 있다.”고 적시한 겁니다.

물론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슈퍼 기축통화의 필요성을 일축했고,2010년 위안화의 SDR바스켓 편입은 무산됐습니다.그래서일까요.중국은 이제 미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그 반열에 오르겠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런데 SDR의 역사를 쫓다보면 존 메이나드 케인스를 만나게됩니다. 2차대전 이후 국제통화체제를 결정하는 브레턴우즈 회의에서 미국 대표 해리 화이트에 밀려 영국 대표 케인스의 국제결제통화인 '방코르(Bancor)' 도입안은 좌절됐습니다. 일각에선 케인스의 방코르 구상이 사후 21년만인 196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제22차 국제통화기금(IMF) 연차 총회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전합니다. 금(金)과 미국 달러화만큼 효력을 갖는 SDR이 탄생한 겁니다.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불어나고 금 보유량이 크게 줄면서 국제금융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SDR 탄생 배경입니다.

하지만 SDR은 무늬만 슈퍼통화라는 지적이 많습니다.SDR은 IMF 회원국이나 국제기구 등이 사용할 뿐 개인이나 기업 투자회사 등은 보유할 수 없습니다.중국이 주창하는 SDR의 역할 강화가 SDR의 용도 확대로도 이어질 지 주목됩니다.

SDR은 처음엔 달러처럼 금과 연동됐습니다.1973년 미국이 달러와 금을 연동한 고정환율제를 폐지하고 변동환율제를 시행하자 1974년 7월 무역비중이 높은 16개국의 통화시세를 가중평균한 형식으로 운용됩니다.1980년 9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5개국 통화를 바스켓으로하는 시스템으로 바뀝니다.프랑스와 독일 통화는 이후에 출범한 유로화로 대체됐구요.

이 같은 역사를 지닌 SDR의 역할 강화론의 선두에 중국이 있는 겁니다.SDR 바스켓에 위안화를 편입시키는 동시에 SDR 위상을 키워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체제를 흔들겠다는 중국의 구상이 실현될 지 판단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하지만 케인스가 그런 노력을 펼치는 저우샤오촨을 만난다면 환한 미소를 지었을 듯 싶습니다.SDR를 통해 위안화를 기축통화의 반열에 올리려는 저우샤오촨의 꿈과 그 꿈을 통해 케인스의 슈퍼통화 구상이 빛을 볼 지 주목됩니다./중국전문기자 kjoh@hankyung.com(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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