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갤럭시가 아이폰에 밀리는 이유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이호영 중앙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1. 인문학 힐링 광신교
종교는 인문의 영역이지만 한국에서 인문학은 종교이기도하다. 종교다 보니 교주가 있고 광신도가 따르고 빠들이 포진한다. 교주가 교보문고에 교시를 반포하면 광신도와 빠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단숨에 순위를 올리고 언론을 압박해 나팔소리를 울리도록 한다.

사인회 같은 화려한 공연이라도 벌어지면 구루피(groupie)들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몰려든다. 빠들에게 둘러싸인 교주는 피를 토하는 표정으로 인문학은 힐링이지만 위기에 처했다! 때문에 인문가치를 무시하는 사회는 죽을 것이라고 선지자처럼 예언을 한다. 어디나 사이비종교는 종말론을 먹고산다.

인문학이 힐링이란다. 힐링의 측면을 지니기는 하지만 인문학이 힐링은 아니다. 그런데도 인문학이 무슨 페니실린이나 백신이나 되는 양 우리사회의 모든 부조리나 심지어는 불황조차 인문학에서 치료법을 찾으려한다. 미안하지만 인문학에서 힐링을 기대하지 마라. 인문학의 힐링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능력 밖의 일을 하다 과로로 쇠약해지고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중환자실에 격리된 지 오래다. 아서라. 힐링에게 치료받으려다 병 옮는다.

교주의 철학은 어떤 논리를 갖는지 궁금해 책을 읽고 독서클럽에까지 나갔었다. 배우려는 겸허한 자세로 정독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책은 마지막까지 철학자라면 보여야 할 논리적 주장은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거론한 스피노자는 국물도 맛볼 수 없었고 문투와 내용은 여러 사람이 분야별로 짜깁기 한 누더기 같았다. 그래도 다루는 주제는 일목요연했다. 남녀 간의 사랑! 달리 보면 몸을 바치라는 메시지 아니었을까?

2. 인문 가치 유통업
인문과 인문학은 다르다. 인간이 살아가며 만들어 나가는 문화현상이 인문이고 이를 정리하고 분류한 것이 인문학이다. 정리, 분류하다보니 분류할 분야가 없어 정작 중요한 것을 잡아내지 못하기도 하고 오래전 폐기된 어장에 쓸데없이 쳐 놓은 그물도 상당하다. 옛것을 정리하고 새 틀을 짜는 일도 인문학자의 업무다.

현재 인문학의 위기는 바로 분류와 정리의 위기이기도 하고 이에 더해 인문학만의 본질적인 임무가 있다. 그럼 인문과 인문학에 대해 쉽게 풀어보자.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해내면 유통업자가 상품을 배급하고 소비자는 돈을 지불하여 상품을 구매한다. 상품의 생산, 유통 그리고 소비가 자본주의의 기본구조다. 인문과 인문학도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사람들이 어떤 상품이나 일 혹은 생각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 이런 감정이 상품이나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매기는 가치다. 가치야 말로 인문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상이 생산해 낸 가치는 아직 조악하고 배급체계가 부실하다. 팔아먹으려면 포장과 가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문학자의 일이 여기에 있다. 먼저 생산된 인간적인 가치를 사회적이고 논리적인 틀(KS라 하자)에 맞추어 포장, 가공한다. 틀에 맞추어 가공된 가치가 바로 인문학이다. 여기서 인문학자는 가공업자다. 다음으로는 모두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논문이나 책으로 유통한다. 여기서 인문학자는 유통업자다.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상품은 생산도 없으니 소비도 없다. 신제품 광고란 바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다. 즉 우리가 만나는 모든 상품이나 분야의 뒤에는 언제나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인간이 다루는 어느 분야도 인간적인 가치를 넘어설 수 없다. 인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의 CEO이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들고 나올 때 기술과 동일하게 인문을 강조했다. 그도 인문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삼성도 핸드폰을 만들고 애플도 핸드폰을 만든다.

그런데 애플의 주식이나 핸드폰이 삼성 것보다 더 가치가 높다. 심지어 중고폰의 가격까지 애플이 더 높다. 둘이 보여주는 차이도 확실하다. 삼성은 줄 곳 CPU등 부품이 월등하고 성능이 더 빠르다고 선전한다.

반면에 애플은 부품이나 성능 이야기는 쑥 빼고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하라고 한다. 심지어 약점이라고 지적되는 배터리교환도 거부한다. 프로그램이나 테크놀로지 같은 건 아예 신경도 쓰지 말고 너의 가치에 집중하라 한다. 기계로서는 삼성이 월등한지 모르지만 인문은 애플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애플의 가치가 더 높다.

3. 인문 홍수
한국에는 수많은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가 있다. 매 사이트마다 사건에 대한 해설이나 기기에 대한 사용기가 올라오고 회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오간다. 특유의 댓글 문화가 전 세계 어디보다 더 활발한 소통을 이끌었다. 이 모든 대화와 토론이 바로 인문이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최대의 인문 홍수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단지 부실한 인문학자들이 가공 배급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자체적으로 인문학을 대신하려는 움직임이 나왔다. 요즘 가장 문제시되는 일베, 오유 모두 다 디씨인사이드라는 카메라동호회의 갤러리라는 섹션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바로 인문학적 반성을 결여한 인문학 짝퉁이다. 특히 일베란 인문학적인 가공을 거치지 못해서 생긴 불량품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다. 이전 세계를 유지하던 가치 체계가 몰락했음을 선언한 것이다. 동일하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다루지 못하는 한국의 인문학도 죽었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과 분류에 매달려있는 우리 인문학자들은 죽은 자식 불알만지기하고 있는 중이다. 죽은 자식이 앞에 있으니 정신은 혼미하고 눈에 초점도 풀렸다. 미친 교주가 나와 인문학가지고 어떤 헛짓을 해도 마비되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인문학은 감감무소식이다.

인문학은 안 팔리고 취직도 힘들어서 대학의 학과는 통폐합 또는 폐지한다. 그렇다. 더 이상 소용없는 분류에 매달리는 학과는 폐지해도 무방하다. 현실적으로 세상을 해석할 틀을 제공하지 못하는 기존의 인문학과는 없어도 그만이다. 기존의 인문학을 폐지하면 명퇴할 교수들의 실업 문제가 생길 뿐이다.

어떤 전공을 하던 그 안에 깃든 인간적 가치가 있어서 이를 발견하여 가공하고 배급하면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간이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한 추구하는 인간적인 가치는 없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의 변화에 맞춘 배급시스템인지가 중요하다. 새 술은 새 잔에 마셔야 하듯 세상이 만들어 내는 새 가치는 새로운 인문학이 담당해야할 것이다. /wesyuzna@naver.com(끝)

오늘의 신문 - 2024.05.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