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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디플레 위험' 커졌다...'위대한 역설'에 빠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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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10일 발표된 중국의 물가지수는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은 각각 전년 동기대비 1.4%와 마이너스 2.7%를 기록했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예상치(1.6%)를 밑도는 수준으로 5년만의 최저입니다.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물가상승률 둔화)이 심화되면서 디플레이션 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생산자물가지수 역시 예상치(마이너스 2.4%)보다 더 많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이미 33개월 연속 하락세입니다.

이날의 물가지표와 함께 최근 발표된 부채 통계가 눈길을 끕니다.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해외 여신 규모입니다. 6월말 현재 해외 은행의 중국 여신 잔액은 1조1000억 달러로 1년반 만에 2배로 증가했습니다. 중국의 부채 문제는 지난 7월 파이낸셜타임스가 6월말 현재 총부채 규모가 GDP의 251%로 2008년말(147%)에 비해 크게 불어났다고 경고하면서 부각됐습니다.

디플레와 부채를 연계시켜 불황을 얘기한 경제학자가 바로 어빙 피셔입니다. 피셔는 위기 전의 과다한 채무와 위기가 발생했을 때의 과다한 디플레이션이 불황을 키울 것이라는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을 주창했습니다. 1837년 1857년 1893년 1929년의 미국 상황이 이 이론의 근거가 됐습니다.

이 이론은 우선 디플레이션으로 실질 채무부담이 커진 채무자들이 자산을 긴급처분하고, 은행예금을 인출할 것으로 봅니다. 이에 따라 자산 가격이 떨어지고 예금통화 감소로 인해 전체 자금공급이 위축됩니다. 이는 다시 기업과 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가치를 함께 끌어 내립니다.

채무자들은 더 많은 자산을 서둘러 팔게 되고 이는 더 심한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시장의 유동성은 줄고 비관주의가 퍼집니다. 결과적으로 불황 중에 집단으로 채무청산이 이뤄지면 이 과정에서 낮아진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역설적으로 채무의 실제부담을 키웁니다. 빚을 갚는 채무자들이 되레 빚에 압도되는 겁니다. 피셔는 이런 현상을 '위대한 역설'(great paradox)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들어 달러 부채를 크게 늘리는 중국기업으로선 내년에 예정된 미국의 금리인상과 달러 강세에 따라 채무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됩니다. 물론 중국은 4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이 있어 외환위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은 기우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급격한 유가 하락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웁니다. 유가하락이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면 좋지만 물가하락과 경기침체가 겹치는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악순환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경기둔화는 유가하락이 선순환보다는 악순환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키웁니다.

중국 경제가 ‘위대한 역설’에 빠져 피셔의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될지 주목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5.02.0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