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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말 '관료천국'과 21세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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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증권부 기자) 전통시대 중국은 관료의 나라였다.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다. 존 킹 페어뱅크에 따르면 청나라 말 중국은 관료제의 천국이었고, 에티엔 발라스는 중국을 ‘영원한 관료제 사회’로 묘사했다.

그리고 이 같은 관료제의 최상부에 진입하기 위해 중국의 지식인들은 ‘시험지옥(미야자키 이치사다)’이라 불리는 과거에 통과하기 위해 쓸모 없는 ‘시험용’ 팔고문만 몰두했다.

반면 거대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경제력을 유지하던 중국의 상업은 중세 이후 정체에 빠졌다. 청나라 말이 되면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리고 이 같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원흉으로 흔히 관료제가 거론된다.

청말 당시 상인들은 힘과 능력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관료들의 독단적인 행동에 종속돼 있었다. 관료들은 홍수나 가뭄 같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상인들에게 헌금을 요구했고, 면허장이나 독점권을 빌미로 부자들에게서 선물 받기를 원했다.

상인들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공업 분야보다는 토지나 부동산에 투자해 지주신사층(地主紳士層)에 합류하는 길을 택했다 관료들마저 관직을 통해 조성한 합법적·비합법적 재산을 토지에 재투자하는 상황에서 ‘연약한’ 상인들이 취할 다른 길은 없었다. 중국에서도 도시화가 시작되면서 관리에 대한 상인의 종속은 다소 느슨해졌지만 결코 그들은 관료의 감독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관료들에게 있어서 상인은 언제나 개인적 이익, 혹은 국가적 이해관계를 위해 이용하거나 ‘쥐어짜야 할’ 존재에 불과했다. 상업 활동은 언제나 관료의 감독과 징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소금과 철, 차, 비단, 담배, 소금, 성냥 등은 국가가 전매제도로 운영했다.

관료들은 어떤 상인층도 이런 특권을 침식할 만큼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료들은 상호간 보호관계와 혈연관계를 맺으면서 사실상 세습적인 관료귀족제를 구축했다.

관료들은 상인의 사유재산권을 무시했고, 아무리 큰 상업세력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 관료의 후원과 지지를 얻어야만 했다. 오늘날로 치면 상인과 은행가, 중개인 그리고 모든 종류의 거래인은 관료제에 종속된 부속계층에 불과했다. 학자 관료 집단은 세금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상인(부르주아)들이 그들에게 도전하는 것을 방지하는 국가독점체제를 창조해냈다.

관료들은 농민과 상인이 힘을 합치는 것을 두려워했고 이를 방지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리고 유교적 ‘효(孝)’의 덕목을 강조하면서 중국을 순종적인 대중들을 생산해내는 거대한 공장으로 만들었다.

서구 학자들은 이처럼 상인들이 지주신사와 관료에 종속돼 독자적인 확고한 지위를 확립하지 못한 데서 자본주의가 중국에서 번창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그나마 관료로 대표되는 중국의 엘리트들은 중화문명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변화의 필요성을 못 느꼈고 현실에 안주하려 했다.

이 같은 체제 하에서 ‘경제적 인간’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것 중에서 자신의 몫을 최대한 늘리는 자”였다. 혁신적인 기업가 정신보다는 관리에게 돈을 지불해 기존 시장을 통제하는 독점이라는 ‘지름길’을 택하는 게 합리적이면서도 선택 가능한 대안이었다.

이를 두고 페어뱅크는 “중국의 전통은 보다 나은 쥐덫을 만드는 게 아니라 쥐에 대한 공인된 독점권을 얻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나마 관료제도 제도화된 ‘수탈’을 통해 유지됐다. 예산과 회계는 불투명했고, 관료들은 강탈이나 오늘날 ‘체계적인 부정’이라고 부를 행동에 의존해 생활을 꾸렸다. 상관에게 ‘선물’을 올리는 것은 관습이었고 자연스런 일이었다. 고위 관직은 자연스럽게 축재(蓄財)를 의미했다.

공공기관에선 ‘낙하산’논쟁이 끝없이 이어진다. 공직 청렴도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평가에서 한국은 올해 100점 만점에 55점이라는 낙제점을 받았다.

상당부분 ‘관료 천국’이라 불리는 사회의 부작용들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관료를 위한 세상을 만들었다가 태평천국의 난 등으로 무력하게 무너졌던 청나라 말의 역사가 절로 오버랩 된다. (끝)

(참고한 책)

존 킹 페어뱅크,『신중국사』, 중국사연구회 옮김, 까치 1994

막스 베버,『지배의 사회학』, 금종우·전남석 옮김, 한길사 1993

Etienne Balazs,『Chinese Civilization and Bureaucracy』, Yale University Press 1967

Ichisada Miyazaki,『China‘s Examination Hell-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s of Imperial China』, Yale University Press 1981

Robert A. Scalapino,『The Politics of Development-Perspectives on Twentieth-Century Asia』, Harvard University Pres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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