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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된장녀입니다" 공익광고도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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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이 경제부 기자) 전남 영양군 석보면에 살고 있는 A씨(28). 베트남 출신의 이주 여성인 그는 2006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했습니다. 결혼 초부터 병환 중이던 시조부(92) 대소변을 받아내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지요. 신체장애를 가진 남편, 위암 환자인 시아버지, 폐암 환자인 시어머니. 어려운 살림이지만 농삿일을 하며 성실하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데요.

A씨는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한 재단으로부터 '다문화 효부상'을 받았답니다. 그동안 낯선 땅에서 정성을 다해 시부모를 봉양하며 열심히 살아온 것을 알아준 건데요.

문득 2년 전에 지하철 안에서 봤던 공익광고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된장녀입니다' 라는 자극적인 문구에 절로 눈이 갔었지요. 한 젊고 예쁜 동남아 여성이 앞치마를 두른 채 활짝 웃으며 된장찌개 뚝배기를 들고 있는 공익광고였어요.

"저는 된장녀입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고 끓이는 것도 참 잘해서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지요. 처음엔 냄새도 잘 못 맡았는데 이젠 정말 된장 사랑해요. 한국 사랑해요!"

법무부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견을 깨자"며 실시한 공익광고였습니다.

동남아 이주 여성들을 한국에 잘 정착시키기 위해 정부는 공익광고도 내고 이런저런 지원을 하고 있더라고요. 한국어 강좌도 마련하고, 10개 외국어로 한국음식 요리법을 담은 책자를 만들어 이주 여성들이 법무부 출입국사무소에서 외국인 등록을 할 때 나눠주기도 하고요.

실제로 이주여성이 한국에 와서 가장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가 삼시세끼, 특히 아침식사를 밥과 찌개로 차리는 일이라고 합니다. 동남아 기후 상 이주 여성들은 아침에 열대과일을 깎아 먹거나 간단히 식당에서 먹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 여성들이 한국에 오면서 가장 먼저 듣는 조언이 "한국 남자들은 아침에도 꼭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라고 하니까요.

하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나라의 경우 다문화 정책의 기본 방향이 한국과는 좀 다르다고 합니다. 이들이 기존 사회에 흡수될 수 있도록 교육도 하지만 전세계 여러 곳에서 이주해온 이들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를 잃지 않도록 유지시켜주는 것이 정책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네요.

이주민들이 온 국가별로 고유 문화를 담은 축제도 열고요. 원래 언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강좌도 마련하고요. 그러다 보니 이주민들은 기존사회에 동화되면서도 자기 뿌리는 잃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치면 꼭 된장찌개를 좋아하지 않아도, 잘 끓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거지요.

한국 시부모 봉양에 온몸을 바친 외국인에게 주는 '효부상'도 그렇습니다. 효부상 말고도 한국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 소개하는 외국인에게도 정부가 상 하나 줬으면 싶네요.

사실 다문화 효부상 사례는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좋은 취지로 준 효부상이 이주 여성들에겐 '지금처럼 이렇게 맞추고 희생하며 살아라'는 무언의 압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7.0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