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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억 걸린 M&A 앞두고 잠 못자…극도의 긴장 상태 지속" [강경주의 IT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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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의 IT카페] 89회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단독 인터뷰(3/3) ▶2편에 이어 계속
태림페이퍼·쌍용건설 품은 김웅기 회장 "매출 10조 노린다"
"쌍용건설을 국내 10위권 건설사로 도약시킬 것"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은 '글로벌 선도 의류기업'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았다. 신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활발하게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2006년 조이너스, 꼼빠니아, 트루젠, 테이트 브랜드를 보유한 인디에프를 인수해 의류 제조에서 유통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8년엔 STX중공업의 플랜트 사업부문(현 세아STX엔테크)을 인수해 플랜트업에 진출했다. 2020년에는 국내 1위 골판지 제조사 태림페이어와 태림포장을 품에 안았다. 지난해 초에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 사업을 하는 발맥스 기술을 거머쥐었고 같은해 12월엔 쌍용건설까지 인수했다. 글로벌세아는 지난 5월 공식적으로 자산 6조원 규모의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글로벌세아는 의류 생산·유통, 건설·플랜트뿐 아니라 골판지·포장, 건설업 등 4대 핵심사업군을 바탕으로 기존 사업의 내실을 다지는 한편 사업 영역 확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김 회장은 2025년까지 매출 10조원, 영업이익 1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창업 후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 없는 그에게 1986년 세아교역에서 2023년 대기업 글로벌세아를 일구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질문했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 예상하셨습니까
창업한지 3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성공을 이뤄가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아직 큰 성공을 거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젠가 제가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은퇴할 때 만들어진 글로벌세아의 모습이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겁니다. 저의 후계자는 또 다른 목표들을 설정하겠지요. 후계자의 성공 역시 그가 은퇴할 때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36세에 뛰어든 창업의 길이 두렵지 않으셨습니까
아내와 어린 두 딸이 있어서 두려웠습니다. 가족은 평생토록 보호해야 할 보물 같은 존재들입니다. 가족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이 남편과 아버지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창업 초기엔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할까 밤잠을 설쳤습니다. 가족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재봉틀이 창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늘 재봉틀 앞에 앉아 계셨습니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들으면서 잠든 날도 많습니다. 어머니는 재봉틀로 옷도 줄여 주시고 버선도 만들었습니다. 자식들의 의복과 이불, 홑청(이불 겉에 씌우는 홑겹으로 된 껍데기), 상보도 뚝딱 만들어내던 마술사 같았습니다. 재봉틀은 마술 지팡이였달까요? 어머니가 재봉틀을 돌릴 때 옆에서 바늘에 실을 꿰어 드렸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가족들이 함께 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마술사입니다. 남편의 박봉 또는 몇 마지기 논밭으로 자식들을 키워내셨습니다. 마술사도 그런 마술사가 없습니다. 어머니들의 희생이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아내와 세 딸을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값진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삶의 전부입니다. 글로벌세아의 모든 임직원들도 저와 같은 마음일 거라고 믿습니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술연습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현재 주량은 어떠십니까?
저는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집니다. 심할 땐 몸에 반점과 두드러기가 나기도 합니다. 창업 초창기에 바이어 두 분을 모시고 술을 마시다 양주 몇 잔에 취해 먼저 잠들어 버린 적이 있습니다. 접대를 받아야 할 바이어가 계산을 하는 낭패를 본 것입니다. 주량을 늘려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그 때입니다. 매일 퇴근할 때마다 생맥주집에 들려 250CC 한 잔을 마셨습니다. 10년이 지나니 청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더군요. 15년이 지나니 소주 한 병을 다 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은 와인을 즐겨 마십니다. 주량은 와인 한 병입니다.
M&A의 귀재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M&A를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M&A는 결정을 내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활시위처럼 극도의 긴장상태가 계속됩니다. 수천억원이 걸린 협상인 데다 경쟁사들도 그룹 내 최고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우리를 위협하기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M&A를 앞둔 시기에는 수면 중에도 절반은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M&A에 성공하면 쉴 수 있냐고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가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기존 조직에 잘 융합시키는 건 더 큰 도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경영을 하다보면 긴장은 계속되고 위기는 소리 없이 갑자기 찾아옵니다. 항상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대처하는 능력이 경영인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수천 수만명의 직원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두려움도 클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던 2020년 세아상역의 주요 고객사들이 주문을 취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산이 끝났거나 진행 중인 주문까지 취소 요청이 들어올 땐 한없이 막막했습니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했고 코로나19는 언제 끝나지 모르는 예측불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세아상역과 협력업체 직원수는 6만여명에 달합니다. 잠을 청하려 눈을 감으면 직원들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매일 새벽 2~3시마다 거실을 배회하는 날들이 이어졌지요. 회사 대표가 힘들다는 티를 내면 임직원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때 처음으로 경영자가 외롭다고 느꼈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어떻게 넘기셨습니까
미국은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의료용 방호복과 마스크 조달이 쉽지 않았습니다. 미국 내에는 섬유 및 의류 생산공장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미 연방정부에서 의료용 방호복을 대량으로 주문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지만 세아상역이 기대를 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조달물자 비딩(Biding, 경쟁입찰)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회사들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 불이 꺼져가던 그때 사업적으로 우연히 알게된 지인을 통해 미 연방정부 비딩에 참여하게 됐고 의료용 방호복과 면 마스크 대량 수주에 성공했습니다. 모든 공장을 풀가동해도 생산량이 부족했습니다. 덕분에 세아상역은 코로나19 시국에 매출과 영업이익이 더 증가했습니다.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계기입니다.
글로벌세아의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우선 제지와 건설업에 집중을 할 계획입니다. 현재 합산 연 매출 1조4000억원 규모인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 매출을 2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할 생각입니다. 태림포장은 청원공장 5만평 부지 중 여유부지 2만5000평에 설비 증설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 연말 가동이 목표입니다. 태림페이퍼는 고지(폐지)를 원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그룹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국내 1위인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은 2위와 격차를 더욱 벌릴 것입니다.

지난해 말 두바이 투자청으로부터 인수한 쌍용건설도 중요합니다. 쌍용건설은 싱가폴 마리나베이 샌즈, 두바이에 완공한 아틀란티스 더 로열 호텔 앤드 리조트를 비롯해 해외 랜드마크 건설 경험이 풍부합니다. 문제는 세계적인 건축 및 토목 공사 경험을 가졌지만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는 화려한 실적을 바탕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할 것입니다. 제가 직접 쌍용건설을 챙기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4월 말 기준 쌍용건설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금융권 부채도 거의 없습니다. 운영자금도 충분합니다.

쌍용건설은 두바이 투자청이 10% 지분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랍에미리트(UAE)는 물론 중동과 세계 각국에서 수주활동을 함께 진행할 것입니다. 쌍용건설은 글로벌세아에 인수된 후 이미 국내외에서 1조원 정도의 내실 있는 프로젝트를 수주했습니다. 글로벌세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해 중미에서도 수주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쌍용건설을 국내 10위권 건설사로 도약시킬 계획입니다.

세아상역도 현재 중미, 코스타리카에서 가동중인 방적공장 2개동 7만추를 3개동, 10만추로 증설하기 위한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과테말라에서 매입한 10만평 공단부지도 성토공사를 끝내고 곧 월 250만Kg의 원단을 생산할 수 있는 원단공장 건설을 시작합니다. 저는 여전히 할 일이 많습니다.
남은 목표는 무엇입니까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운좋게도 기업가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저와 글로벌세아는 해외에서 세계를 상대로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해외시장을 더 다변화시켜 애국하는 기업인으로 살아 가겠습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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