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엄마의 외침은 '소음'일 뿐이었다 [별 볼일 있는 OTT]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술영화 '노이즈'(2022)
104분. 12세 이상 관람가



9만 명. 2006년 멕시코 정부가 시작한 '마약과의 전쟁' 이후 지금까지 생사가 묘연해진 그 나라 국민 숫자다. 마약을 재배하기 좋은 날씨에 지리적으로 미국에 유통하기도 편해 일찌감치 마약 카르텔들이 자리잡은 결과다.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섰지만, 이미 카르텔 세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다. 두 세력 간 유혈 충돌이 본격화하며 애꿎은 시민들의 피해만 커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노이즈'(2022)는 멕시코에 만연한 실종 문제와 페미니즘을 결합한 예술영화다. 사라진 딸을 찾아 나선 한 여성이 비슷한 처지의 피해자들을 만나 연대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멕시코에서 페미니즘 영화 '디 이터널 페미닌'(2016)을 연출한 나탈리아 베리스타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어머니 '훌리아' 역할을 맡은 배우 훌리에타 에구롤라가 극을 끌고나간다. 그의 딸 헤르는 9개월 전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딸이 코카인을 소지했던 점,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이 마약 카르텔과 인신매매범들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란 점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카르텔과 결탁한 무능한 공권력은 피해자 가족을 두 번 죽인다. 경찰은 신원 미상의 시체가 모인 공동묘지만 찾아다닌다. 그게 더 빠르고 쉽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우여곡절 끝에 만난 유력한 용의자도 곧 석방된다. 경찰과 검찰은 괜히 카르텔을 자극하면 훌리아만 위험해진다며 조용히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한다.

작품은 대중적인 흥행보다 예술성을 강조한다. 예술영화의 전형이다. 페미니즘, 성 소수자 등 다양성에 초점을 둔 주제 의식을 부각한다. 작품 곳곳에 "한 사람의 여성도 잃을 수 없다"는 문구가 적힌 벽화와 소품을 대놓고 등장시킨다. 후반부에 훌리아가 마주치는 페미니즘 시위대는 보라색 스프레이를 뿌리며 "권력은 그들과 공범이야. 침묵하는 자들도 공범이야"는 구호를 내지른다.



인물 설정 측면에서도 할리우드 영화와 차이가 있다. 상업영화는 통상 주인공이 능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로 짠다. 반면 훌리아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장벽에 가로막힌다. 훌리아가 사건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는 장면을 기대해선 안 된다. 영화는 인물이 절망하고 새로운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을 관통하는 단어는 '소음'이다. 여성과 소수자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목놓아 외쳐도 이를 소음으로 간주하는 사회를 풍자했다. 마지막 시위대의 행진 소리는 불쾌하고 기괴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장됐다. 중간에 등장하는 보랏빛 하늘의 광야에선 훌리아의 한 맺힌 절규가 소리 없이 울려 퍼진다. 영화는 실종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막을 내린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인 '소음'으로 말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