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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선물세트 뜯지도 않고 버려져"…70대 청소부의 호소 [권용훈의 직업 불만족(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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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봉투에 강아지 사체까지 나와
치우는 사람도 조금만 생각해줬으면

월급 적지만 늙어도 일할 수 있어 행복
물가 너무 비싸 77세에도 일 못그만둬"

지난 5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던 70대 청소부를 만났다. 늦은 나이에도 일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는 묵묵히 종이상자에 붙어있는 비닐 테이프를 뜯어냈다.

▷자신을 짧게 소개하자면.
쓰레기 분리수거 대행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4년 차 청소부입니다. 올해로 77살입니다. 이 동네에서는 가장 고령 청소부일 거예요(하하).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을 다시 재분류하고 정리는 일을 해요. 플라스틱병에 음료수가 가득 차 있는 상태로 버려졌다든지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지 않고 아무렇게나 버린 걸 다시 정리하죠. 그대로 방치해두면 쓰레기 수거업체가 가져가지 않거든요.





▷쓰레기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네요.
오피스텔 2동에 400세대 정도 되는데 월요일에는 쓰레기양이 더 많아요. 설날, 추석 명절 이후에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서 2시간정도 더 일찍 출근해야 하루 일과를 끝낼 수 있죠.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시원하게 한턱내고 싶어서 일자리를 알아봤어요(웃음). 그게 벌써 4년 전입니다. 요즘 물가가 너무 비싸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도 엄두가 안 나요. 길거리에서 폐지를 주워도 술자리 한 번이면 일주일 동안 일한 돈을 전부 쓰니까요.



▷월급은 얼마나 받고 있나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쯤 퇴근하는데 한 달에 130만원 정도 받고 있어요.

▷국가유공자라고 들었습니다.
군 복무 시절 월남전에 갔다 왔어요. 그때 공로를 인정받아서 한달에 39만원씩 받고 있어요. 월급과 더하면 170만원 정도 버는데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가 제일 잘 버는 편이죠 (웃음)




▷일하면서 다치신 적은 없나요.
비닐 쓰레기 뭉치를 치우다가 그 안에 있던 칼에 손바닥을 베인 적이 있었죠. 상처가 깊어서 여섯 바늘이나 꿰맸어요. 그때도 다른 사람이 이 일자리를 뺏어갈까봐 꾹꾹 참고 일했었죠. 일흔살 넘는 노인은 어디를 가든 잘 써주지 않거든요.

▷일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오늘이 제일 힘드네요. 제가 어렸을 땐 소고기는 냄새도 못 맡아봤는데 이렇게 한우 선물 세트가 뜯지도 않은 채 버려져 있으니 말이에요. 버리는 건 주인 마음이지만 정말 못살았던 나라가 이제야 조금 잘살게 됐는데 배고팠던 기억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주민들이 쓰레기는 잘 버리는 편인가요.
난장판인거 보이시죠? 어떻게 버려야하는지 알림판에 붙여놔도 쓰레기 봉투조차 쓰지 않는 주민들이 많아요. 배달용기나 페트병 같은 경우에도 내용물을 다 버리고 씻어서 버려야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플라스틱은 업체에서 받아주지도 않아요. 전부 일반쓰레기로 소각되죠.

▷그럼 어떻게 버려야 하나요.
우선 종이박스, 스티로폼 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는 제거하고 종이박스는 접어서 버려야합니다. 특히 개인정보가 써져있는 운송장 택배 스티커는 꼭 떼는 게 좋죠. 보이스피싱 같은 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니까요. 배달음식을 담았던 용기도 음식물이 남은 그대로 버려지는데 정말 재활용되길 바라면 음식물을 비우고 용기를 씻어서 버려야해요.



▷가장 황당했던 경험은 뭔가요.
몇년 전 검은색 비닐봉투에서 강아지 사체가 나온게 가장 황당하고 잊혀지지가 않네요. 날이 추워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강아지를 인근 야산에 묻어줬었죠. 저도 강아지를 오랫동안 키웠거든요.

▷앞으로 목표는.
힘닿는 데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요. 가족들은 이제 그만 쉬라고 하는데 이 나이 먹도록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게 영광이죠. 쓰레기를 다 정리해놓으면 뿌듯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올해도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직업 불만족(族) 편집자주
꿈의 직장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에서도 매년 이직자들이 쏟아집니다.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이직을 염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야흐로 '大 이직 시대'입니다. [직업 불만족(族)]은 최대한 많은 직업 이야기를 다소 주관적이지만 누구보다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색 직장과 만족하는 직업도 끄집어낼 예정입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직장 생활하는 그날까지 연재합니다. 아래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직접 보고 들은 현직자 이야기를 생생히 전해드리겠습니다. 많은 인터뷰 요청·제보 바랍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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