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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소리"…블랙핑크 신곡에 깔린 '오싹한 음악' 정체 [김수현의 THE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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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입은 블랙핑크…美·英 음악 시장 점령

바이올린 협주곡 2번 3악장…매혹적인 주선율
초절정 기교 연속 등장…'청중 압도' 긴장감 유발

"블랙핑크가 새로운 역사를 써냈다. 그들의 성과에 담긴 의미는 남다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블랙핑크가 또 한 번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미국 일간지 LA타임스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기념비적인 팝 음반이 탄생했다." -미국 유명 음악지 롤링스톤
걸그룹 블랙핑크가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1위에 이어 빌보드 메인 차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습니다. 걸그룹이 양국 앨범 차트를 동시에 휩쓴 건 비욘세가 속했던 데스티니스 차일드 이후 21년 만의 일입니다. 블랙핑크는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도 최상위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이는 명실상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방탄소년단(BTS)보다도 앞선 기록이죠. 블랙핑크가 그야말로 전 세계 음악 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걸그룹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셈입니다.

블랙핑크의 신곡 '셧 다운(Shut Down)'이 단순히 뇌리에 각인되는 노래와 포인트 안무, 현란한 뮤직비디오 등 표면적 요소만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아닙니다. 200여 년 전 유럽 전역을 열광케 했던 한 예술가의 선율에 자신들의 색깔을 담은 리듬을 완벽히 연결했단 점입니다. 세계 음악 시장은 블랙핑크의 과감한 음악적 시도와 높은 작품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습니다. 미국 빌보드는 "클래식 음악과 블랙핑크의 힙합이 어우러져 가장 통쾌하면서도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는 곡을 만들어냈다"며 "블랙핑크가 세계 최강자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극찬했죠.

그렇다면 블랙핑크 특유의 당당함과 화려함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 날카로운 클래식 선율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신기에 가까운 초절정 기교로 '악마에게 영혼을 바친 연주자'라는 괴소문에 시달렸던 파가니니의 걸작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3악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일찍이 알아본 전설의 피아니스트 리스트에 의해 '라 캄파넬라'라는 악곡으로 재탄생되면서 더욱 널리 알려진 명작으로도 통하죠.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황홀한 기교와 매력적인 선율 진행으로 청중으로 하여금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의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마성의 음악,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악마의 연주자' 파가니니, 고통 속에서 불멸의 명작을 탄생시키다
먼저 작곡가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파가니니는 초인적인 연주력으로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전체를 뒤흔든 최고의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로 통합니다. 파가니니는 모차르트에 대적할 만한 음악적 재능을 지녔던 인물로 전해집니다. 실제 파가니니는 10대에 종전의 바이올린 기법을 모두 섭렵한 뒤 매일 10시간 넘게 연습에 매달리며 최고난도 기교를 연달아 탄생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탈리아 각지를 시작으로 빈, 베를린, 파리, 런던 전역으로 연주 반경을 넓힌 파가니니는 단숨에 가장 몸값이 비싼 당대 최고의 연주자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물론 혹독한 유명세를 피할 순 없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항상 '악마에 영혼을 판 미친 연주자.', '몸과 악기에 악마가 깃든 저주의 연주자' 등 악의적인 소문이 따라붙었다고 합니다. 이는 당시 파가니니가 선보인 기교가 사람의 두 손으로 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탓이었다고 하죠. 기록에 따르면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단 한 줄로 즉흥 연주를 펼칠 수 있었으며 하나의 악기로 오케스트라 전체의 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무대를 보고 뭇 여성이 실신하는 일은 아주 흔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역사상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여겨지는 만큼 그 누구보다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듯하나 파가니니의 실제 삶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유행성 홍역을 시작으로 폐결핵, 매독, 류머티즘, 후두염, 신경 장애 등 수많은 질병을 겪었다고 하죠. 말년에는 순회 연주를 무리하게 진행한 결과로 인후염, 인후결핵을 앓다가 결국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사망 이후에도 고난은 이어졌습니다. 악마와 결탁한 음악가라는 소문 탓에 교회에서 그의 묘지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변변한 묘지 없이 떠돌았던 파가니니 시신은 사후 36년 만에 이탈리아 제노바 교회에 안치될 수 있었습니다.

기이할 정도의 완벽한 연주 실력으로 유럽 전역을 들썩이게 한 파가니니지만 지금까지 널리 연주되는 작품은 바이올린 협주곡 2개, 소나타 21개, 24곡의 카프리치오 등에 그칩니다. 파가니니가 작곡보다 즉흥 연주를 즐겼고 이미 쓴 작품에 대해 비교적 높은 인세를 요구한 것이 타 작곡가 대비 남긴 작품 수가 적은 이유로 꼽힙니다. 다작이 아니었음에도 각 작품들이 음악사에 미친 파급력을 보자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은 파가니니가 남긴 걸작 중에서도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되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초절정 기교가 연속해서 쏟아지는 동시에 폭발적인 표현력, 뇌리에 박히는 매혹적인 선율의 조화까지 이루고 있어 내재한 음악적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이기 때문이죠. 바이올리니스트 지상 최대 난곡(難曲) 중 하나로 불리는 세기의 작품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3악장'. 200여 년 전 1초에 무려 18개 음을 내는 완벽한 연주력으로 모든 청중을 경악하게 했다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모습을 머릿속에 두고 음악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초절정 기교의 향연…숨 막힐 듯한 화려함으로 청중을 압도하다
'따 단단딴' 작품은 바이올리니스트가 강렬한 8분음표 4개를 포르테(f)로 아주 세게 그으면서 시작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강박에 잇따라 달린 짧은 꾸밈음을 연주해 자연스럽고도 화려한 음색을 선보이면 뒤이어 등장하는 오케스트라가 주선율을 그대로 받으면서 웅장하고도 호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후 바이올리니스트가 다시 등장하면 가벼우면서도 재치 있는 선율이 이어지는데 이때 하나의 활 안에서 여러 음을 끊어 연주하는 '슬러 스타카토'활을 현에 던지면서 검지손가락으로만 음표 수를 제어하는 '리코셰' 기교가 함께 나타나면서 악곡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그 뒤로 두 개의 음을 빠르게 짚었다 떼는 것을 반복하는 '트릴'과 현 위 특정 부분에 손가락을 가볍게 대 투명한 소리의 배음을 만들어내는 '하모닉스' 연주가 이어지면 깨끗하면서도 맑은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이내 고음 도약이 시작되면서 서정적 분위기의 선율이 드리우면 바이올리니스트는 검지손가락을 짚는 동시에 새끼손가락을 뻗음으로써 한 옥타브 위의 하모닉스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교적 하모닉스' 연주로 싸늘하고도 기이한 감정을 유발하죠. 곧이어 바이올리니스트가 다시 주선율을 연주하면 아주 작은 피치카토를 이어가던 오케스트라가 단숨에 소리를 키우면서 파도가 치듯 격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후 바이올리니스트가 재등장할 때는 발을 구르는 듯 들리는 8분음표 연타와 슬러 스타카토, 리코셰 기교에 서정적인 선율이 더해지면서 화려하면서도 극적인 분위기가 드리웁니다. 그러면 아주 빠른 속도로 상행과 하행을 반복하는 왼손 주법과 꾸밈음, 악센트가 뒤섞인 연주가 이어지면서 청중으로 하여금 이성적 판단이 불가할 정도의 혼란을 불러일으키죠. 이어 'dolce(돌체 ; 부드럽게 또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연주하라)' 지시어가 등장하면 가볍게 초원을 뛰노는 듯 가벼운 느낌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됩니다. 그렇게 고음 구간 선율이 지나면 최고난도 기법으로 꼽을 만한 '중음 주법'이 출현합니다.

왼손으로 두 줄 이상의 화음을 잡고 활로 동시에 긋는 중음 주법은 마치 두 명이 연주하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음정 간격을 맞추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손 모양을 유사한 형태로 유지하면서도 손가락 위치는 끊임없이 바꿔야 하는 탓에 왼손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죠. 이후 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한 주선율이 재등장하고 오케스트라가 포르테(f)로 마디 전체를 잇는 긴 음표를 연주하면 또다시 지옥의 중음 주법 연주가 시작됩니다. 선율은 매우 서정적이나 고음을 향한 아르페지오와 '왼손 피치카토'가 연속으로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초절정 기교의 향연이 이어지죠.

기본 피치카토는 왼손으로 음정을 잡을 때 오른손으로 현을 뜯는 기법을 뜻하는데 파가니니는 보다 빠른 진행을 위해 왼손으로 음을 잡는 동시에 왼손의 다른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기법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어 중음 주법, 리코셰, 기교적 하모닉스 등 고난도 기법을 연속으로 등장시키면서 악마가 키득키득 웃는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이후 귀가 찢어질 듯 높은 '하이 F#'에서 긴 트릴이 연주되고 순식간에 하향하는 바이올린 선율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면 마지막 주제 선율이 등장합니다. 이를 받은 오케스트라가 풍부한 화성을 이루는 수십개의 음표를 빠르게 진행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현하면 작품은 단 3개의 음으로 강렬하고도 웅장한 인상을 남기며 막을 내립니다.

시작부터 전개되는 매혹적인 선율 진행과 신의 경지에 이른 듯한 화려한 기교, 극적인 표현력으로 청중으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압도적 긴장감을 유발한다는 세기의 걸작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3악장'. 탄탄한 음악적 구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인간의 한계에 도전함으로써 영원불변의 가치를 쟁취한 파가니니처럼 매번 새로운 시도로 전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하는 한국인들의 행보가 불후의 업적을 이끄는 돌풍이 되길 응원하겠습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