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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 달군 임윤찬의 특별한 '바흐 플러스' [송태형의 현장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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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목프로덕션 기획 '바흐 플러스'서
바흐의 건반 협주곡 5번 f 단조 연주
브람스의 발라드 2번' 앙코르로 들려줘
깊이 담은 열정적 연주에 객석 환호

20·27일에는 멘델스존 협주곡 1번 협연


그랜드 피아노가 바로크음악 연주단체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 멤버들 사이, 무대 정중앙에 놓입니다. 그런데 보통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나 독주회에서 설치되는 방향과는 다릅니다. 객석 기준으로 피아노 옆면이 보이는 가로가 아니라 건반을 앞으로 하는 세로로 자리 잡습니다. 바로크 앙상블이 공연할 때 지휘를 겸하는 쳄발로가 놓이는 위치입니다. 피아노 설치가 끝나자 모두가 기다리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객석의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걸어 나옵니다.

1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목프로덕션 15주년 기념 기획 공연 ‘바흐 플러스’ 무대 현장입니다. 클래식공연 기획사인 목프로덕션 소속 아티스트들이 솔리스트로 나와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과 바흐를 연주하는 일종의 갈라 공연입니다. 검은 정장 차림의 임윤찬은 2부에 두 번째 협연자로 등장해 객석을 등지고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지난 6월 19일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공식적으로 국내에서 처음 연주하는 무대입니다.

연주곡목은 바흐의 키보드(건반) 협주곡 5번 f단조. 바흐의 여러 키보드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하고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 연주 길이는 10분가량입니다. 임윤찬은 피아노 소리와 음량을 확인이라고 하듯 가볍게 건반을 울려봅니다. 그러고는 지휘자가 따로 없는 연주이기에 왼손을 들어 4분의 4박자 지휘를 하고는 힘차게 건반을 두드리며 총주로 1악장 알레그로를 시작합니다. 그랜드 피아노 연주를 할 때는 보통 날개(플뤼겔)를 비스듬히 세워 놓는데 이번에는 떼어져 있습니다. 피아노 독주자와 앙상블 단원들 간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콜레기움 무지쿰 서울은 원래 시대악기(고악기)로 연주하지만, 이날은 현대악기를 사용했습니다. 넓은 롯데콘서트홀과 현대악기를 쓰는 솔리스트와의 볼륨 조화를 위해서입니다.

임윤찬은 눈짓과 표정으로 악장 백승록을 비롯한 앙상블 단원들과 소통하면서 연주를 이끌었습니다. 원래 쳄발로로 연주하던 곡답게 페달링 사용을 최소화하며 피아노 울림을 담백하게 줄인 반면, 다이내믹(셈여림)은 최대한 살리면서도 정교하게 조절해가며 역동적인 연주를 들려줬습니다. 2악장 라르고에는 현악 피치카토 위로 너무나 아름다운 칸틸레나(서정적인 선율)가 흐릅니다. 5번을 유명하게 만든 친숙한 선율입니다. 임윤찬은 현악 앙상블과 면밀하게 볼륨을 맞추며 섬세하게 선율을 연주했습니다. 라르고 선율이 잦아들 무렵 다시 왼손을 올리고 앙상블과 3악장 프레스토 개시의 합을 맞춥니다. ‘매우 빠르게‘란 지시어 대로 굉장한 속도감으로 연주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 음 한 음이 또박또박 들리기보다 흐르는 듯 뭉치는 감이 없지 않았고, 앙상블과의 볼륨 조화가 살짝 아쉬운 대목도 있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박력 넘치는 마지막 악장이었습니다.



합창석까지 만석인 객석에서 큰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날 공연장 객석을 꽉 채운 관객 중 상당수는 임윤찬을 보러온 팬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전까지 솔리스트들이 앙코르 연주를 하지 않았기에 ‘10분 연주로는 관객들이 아쉬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참에 다시 무대로 걸어 나온 임윤찬이 의자에 앉았습니다. 바흐의 파르티타 1번 중 ‘사라방드’를 혼자만의 세계로 깊이 침잠하듯 음악에 빠져들어 연주했습니다.

악보를 들고 퇴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 끝났구나 싶을 때 다시 걸어 나온 임윤찬은 지체없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두 번째 앙코르 연주를 들려줍니다. 브람스의 4개의 발라드 중 2번.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바흐 작품이 아닌 연주곡이었습니다. 앙코르곡치고는 다소 무겁지 않나 싶은 곡이기도 한데 ’위대한 바흐’의 부담감을 조금 덜어냈나요. 템포와 다이내믹에서 변화의 폭이 큰, 임윤찬의 패기와 열정이 담긴 자유로운 브람스를 들려줬습니다. 임윤찬의 특별한 ‘바흐 플러스’였습니다.

이날 공연 1부에선 박수예가 바이올린 협주곡 2번 E장조, 노부스 콰르텟의 김재영과 김영욱이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를 들려줬습니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재학 중인 박수예(22)의 무대 연주는 4년 만에 들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여유롭고 안정감 있게 음악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2부에선 첫 순서로 클라리네티스트 조성호가 칸타타 ‘나는 만족하나이다’ 중 1곡의 선율을 연주했습니다. 특유의 무대 매너로 관객의 시선을 붙들면서 바흐의 숙연한 선율을 감동적으로 들려줬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임윤찬의 스승 손민수가 이효주와 함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c단조를 들려줬습니다. 두 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한 앙코르곡 ‘시칠리아노’가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두 피아니스트의 감성이 빚어내는 풍성한 하모니가 참 아름다웠습니다.


임윤찬은 밴 클라이번 우승 이후 국내외에서 바쁜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바흐 플러스’에 이어 국내에선 오는 2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김선욱이 지휘하는 KBS 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합니다. 27일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강원 평창군 계촌마을에서 여는 ‘계촌 클래식 축제’에서도 윌슨 응이 지휘하는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같은 곡을 연주합니다. 임윤찬이 멘델스존 1번은 어떻게 해석해서 들려줄지 기대가 됩니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