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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소·회·피'…피할 수 없는 4대 폭탄 모두 터지나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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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증시 주간전망대
소비 충격 준 제2의 '타·월(타깃·월마트) 쇼크' 재현?
러시아 디폴트, 소비재 기업 실적, FOMC 회의록, PCE 주목



미국 증시가 두달 째 내리막입니다. 잇따른 돌발 악재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호재와 악재가 혼재해 있어도 불안하기 때문에 악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불안함의 근원은 인플레이션입니다. 인플레이션의 정점이 어디인 지, 언제까지 꼭지를 이어갈 지 아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쉬이 낙관론으로 돌아서기 힘듭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으로 끝이 아닙니다. 심한 운동 뒤에 경련이 뒤따라 오듯 극심한 인플레이션은 경기침체를 수반할 가능성이 큽니다. '연착륙'(soft landing)이거나 '준(準) 연착륙'(softish landing)이기를 바라고 있지만 여전히 희미합니다.



이게 조금이라도 뚜렷해진다면 증시 바닥이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 때까지 악재가 나올 때마다 바닥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나을 듯합니다.

다만 덜 아프게 매를 맞기 위해 그 악재를 짐작하고 있어야 합니다. 5월 넷째주엔 시장을 뒤흔들 네 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러시아 디폴트(채무불이행)와 소비 쇼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 개인소비지출(PCE) 등입니다. 앞 글자만 따오면 '러·소·회·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생각 같아선 회피하고 싶지만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론 피하지 못하면 즐겨야 하는데 그러기도 만만치 않고. 그냥 악재를 예상하면서 버티는 게 상책인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세지 않은데'나 '걱정한 것과는 반대인데'라고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갚겠다해도 채권자가 안받겠다는 '러시아 디폴트'


지난 2월 25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장기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당초엔 희망회로를 돌려 5월에 양측이 휴전을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미국 재무부도 비슷한 맥락에서 전쟁 발발 석 달 째가 되는 5월25일을 분수령으로 잡았습니다. 대(對) 러시아 제재로 러시아와의 금융거래를 금지했는데 이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거래를 허가하는 유예 기간을 뒀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언제 끝날 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26일부터 러시아는 미국 등과 금융거래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러시아는 루블화로 국채 등에 대한 원리금을 갚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자체적으로 디폴트나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을 선언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채권자들이 안받거나 못받게 하겠다고 합니다. 키는 미국 재무부가 쥐고 있습니다. 25일 전후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러시아 국채에 대한 유예기간을 연장한다"거나 "유예기간을 만료한다"고 선언하면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현재 러시아 디폴트 충격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러시아 디폴트로 인한 손실 규모는 제한적이란 견해도 있지만 제2의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1998년 미국의 헤지펀드였던 LTCM은 러시아 국채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보고 결국 파산했습니다. 당시 다우 지수는 전고점 대비 24% 급락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이 좀 더 우세한 편입니다. 다만 조그만 악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장 상황에서 러시아 투자액이 많은 유럽 은행들 중심으로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제 2의 '타·월 쇼크' 오나


지난주엔 타깃과 월마트의 '어닝 쇼크'가 시장을 강타했습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매출은 늘어도 이익이 줄었습니다. 급증한 인건비와 물류비, 유류비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비자들이 음식 같은 필수재는 못 줄여도 내구재 같은 일반 상품은 덜 사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이로인해 미국의 소비에 대한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이 심해도 미국의 소비와 생산이 받쳐주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타깃과 월마트 실적을 보면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도달하기 전까지 수요파괴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번 주에도 제 2의 타깃이나 월마트가 나올 수 있습니다. 소비 기업들이 줄줄이 실적을 발표합니다. 24일에 전자양판점인 베스트바이와 백화점인 노드스트롬 등이 실적을 내놓습니다. 26일엔 코스트코와 메이시스 백화점, 달러 트리 등이 어닝 시즌을 이어갑니다.

일반 상품을 중심으로 소비 위축 조짐이 확인되면 증시는 또다시 흔들릴 수 있습니다. 베스트바이에서 중고급 전자제품이 덜 팔린다거나 메이시스 백화점의 의류 매출이 줄었다거나 하는 소식이 들리면 경기침체 우려가 커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FOMC 회의록에 깜짝 발언 주목


긴축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에 없던 현상 중 하나가 FOMC 의사록의 영향력입니다. 과거엔 Fed가 FOMC 정례회의를 연 날, 거의 모든 내용을 발표했지만 최근엔 FOMC 회의록에 중요한 내용을 남겨놓습니다. 대부분 Fed의 '매파 본색'에 대한 내용입니다.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발표 내용을 분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올 1월에 공개된 지난해 12월 FOMC 회의록에선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고 양적긴축(대차대조표 축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3월 회의록에는 예상과 달리 양적긴축에 대한 소상한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미 국채와 주택저당증권을 합해 월 최대 950억달러씩 자산을 줄인다는 계획이 포함됐죠. 그리고 5월뿐 아니라 한 차례 이상 '빅스텝'을 밟은 것이란 내용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모두 시장에 충격을 줬습니다.



오는 25일에 나오는 5월 FOMC도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6월과 7월 50bp(1bp=0.01%포인트)씩 금리를 인상한다는 시장 예상을 깨는 발언이 있을 수 있습니다.

6월에 시작할 양적긴축 속도에 대한 내용도 주목해야 합니다. 6월부터 월 475억 달러씩, 9월부터 950억달러씩 자산을 줄이기로 했지만 양적긴축의 최종 목표치에 내용은 아직 미공개된 상태입니다. 최종적으로 Fed의 자산을 얼마까지 줄이고 어느 정도 속도로 감축할 지에 대한 힌트가 있다면 큰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그리고 5월 FOMC 회의록이 나오기 전날 제롬 파월 Fed 의장이 공개석상에 섭니다. 파월 의장은 회의록 내용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미리 비슷한 톤의 얘기를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플레이션 "정점이다" vs "계속 높다"

결국 '기승전 인플레이션'입니다. Fed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개인소비지출(PCE)이 27일 발표됩니다.



지금 인플레이션 논쟁이 뜨겁습니다. 인플레이션이 꼭지를 쳤다는 '정점론'과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것이라는 '고지론'이 맞서고 있습니다.

다들 정점론을 지지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지표로는 고지론이 우세합니다. 3월 PCE는 1년 전보다 6.6% 올랐습니다. 현재 예상치는 6.4% 정도입니다. 4월 PCE가 이보다 훨씬 낮게 나온다면 정점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시장에 안도감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CPI처럼 애매한 수준으로 낮게 나오면 '고지론'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나온 4월 CPI는 1년 전보다 8.3% 상승했습니다. 40여 년 만의 최고치였던 지난 3월 상승률(8.5%)보다는 둔화됐지만 예상치였던 8.1%를 웃돌아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했습니다.

그리고 Fed의 금리 결정의 핵심 지표인 근원 PCE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인플레이션의 주범은 에너지와 식품입니다. '푸틴발 인플레이션'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시진핑발 인플레이션'이 더해지면서 에너지와 식품을 뺀 물가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게 근원 CPI였습니다. 에너지와 식품을 뺀 CPI 근원 물가는 전달보다 0.6% 올랐습니다. 3월 상승률(0.3%)의 두 배입니다. 연율로 환산하면 7.0% 수준입니다. Fed의 목표치 2%보다 현격히 높습니다.

근원 PCE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Fed의 긴축 속도를 더 빠르게 할 명분이 됩니다.



전체적으로 25일 전후로 많은 일들이 몰려 있습니다. 러시아 디폴트 결과와 FOMC 의사록이 25에 나오고 소비재 기업들의 실적이 24일과 26일에 나옵니다. 26엔 한국 금융통화위원회도 열립니다.

7~8주 동안 파랗게 질려 있는 뉴욕증시가 붉은 빛으로 물들 지는 25일을 분수령으로 해서 결정될 전망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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