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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로 100억 모아 국보 공동구매…이게 가능하다니 [임현우의 비트코인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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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DAO' 결성, 클레이로 모금
간송미술관 국보 경매 참여 추진
"수요일까지 50억 못모으면 해산"



1월 25일 한국경제신문의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코알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주 5회, 매일 아침 발행하는 코알라를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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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7일로 예정된 한 경매에 문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이 재정난을 이유로 소장 중인 국보를 매물로 내놓으면서다. 케이옥션은 27일 열리는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과 ‘금동삼존불감(佛龕)’을 올린다. 1962년 국보 제72호와 제73호로 지정된 두 문화재의 추정가는 삼존불입상 32억~45억원, 삼존불감 28억~40억원.

과연 두 문화재가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지,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이 경매에 뛰어들지가 세간의 관심사다.

그런데 국내 블록체인 업계에서 '공동구매' 방식으로 이들 문화재를 확보하려는 이색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일종의 '조합'인 탈중앙화자율조직(DAO·다오)을 결성해 불특정다수에게 자금을 모아 경매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정우현 아톰릭스랩 대표, 한재선 그라운드X 대표 등을 주축으로 꾸려진 '국보 DAO'다.

24일 서울이더리움미트업 주최 화상회의에서 정 대표와 한 대표는 국보 DAO 프로젝트의 밑그림을 공개했다. 두 문화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발행해 암호화폐 클레이(KLAY)를 받고 판매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모은다.


DAO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구성원의 투표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조직을 뜻한다.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획득하기 위해 DAO가 나선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헌법 초판 인쇄본이 소더비 경매에 매물로 나오자 출범한 '헌법 DAO'가 대표적이다. 더 높은 값을 써낸 사람에 밀려 낙찰엔 실패했지만, 결성 7일 만에 약 4000만 달러를 모금해 화제를 모았다.

헌법 DAO는 이더리움을 활용했지만 국보 DAO는 카카오가 만든 블록체인 네트워크인 클레이튼(Klaytn)에서 모금부터 환불까지 모든 과정을 처리한다. 해외에서 참여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국내에는 클레이를 보유한 코인 투자자가 많다는 점에서다. 이더리움은 거래 때마다 수수료(가스비)가 많이 든다는 한계도 감안했다.

한 대표는 정 대표의 제안을 받고 그라운드X 대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입찰까지 시간이 촉박하고 국내법상 불확실성도 커 원칙대로라면 하지 않는 게 맞다"면서도 "한국 사람이 한국 국보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일단 해보자고 시작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DAO는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조직이다. 국보 DAO 측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합을 설립하고, 클레이를 입금한 NFT 구매자는 자동으로 조합원이 되도록 구조를 짰다. 조합이 문화재를 직접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별도 재단도 설립하기로 했다. 모든 데이터는 블록체인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구상이다.


경매에서 두 문화재를 모두 구입하려면 100억원 안팎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국보 DAO 조합원이 되려면 클레이가 최소 350개 이상 필요하다. 빗썸에 따르면 클레이는 24일 기준 개당 1300~14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국보 DAO가 낙찰에 실패하면 클레이는 모두 돌려받을 수 있고, NFT는 기념품으로 가질 수 있다. 한 대표는 "26일 오후 12시까지 모금액이 50억원에 미치지 못하면 DAO를 해체하고 투자금을 모두 환불할 것"이라고 밝혔다.

낙찰받는 데 성공할 경우 문화재를 어느 미술관에 위탁할지 등은 향후 DAO 투표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기업 주주가 '1주 1표'를 행사하듯 국보 DAO에서는 클레이 수량만큼 투표권이 많아진다.

국보 DAO가 목표로 잡은 모금액을 채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 대표는 "성공할 수도, 못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학습 기회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들은 결성 취지문에서 "국보 DAO는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시민 스스로 주체가 되어 보호하고, 그 의미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기획된 프로젝트"라며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많은 시민과 커뮤니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탈중앙화된 의사결정을 통해 목표를 이루려는 것"이라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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