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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냄새, 엄마는 공격적으로…아빠는 유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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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원의 사이언스 톡(talk)]
와이즈만연구소 '헥사데카날' 연구



곤충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할 때 내뿜는 화학 물질을 ‘페로몬’이라고 한다. 나방이나 꿀벌, 진딧물 등 여러 곤충들이 짝짓기를 하거나 적을 공격할 때 주로 내뿜는 물질이다. 공기 중에 퍼지기 좋은 휘발성 물질들이다. 많은 곤충들에서 페로몬이 발견되며, 학계에서는 인간에게도 페로몬이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있어왔다. 대세는 ‘인간은 페로몬으로 소통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기울었지만, 최근 아기가 페로몬과 유사한 물질을 내뿜는다는 연구가 발표됐다.

최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는 아기의 머리에서 분비되는 휘발성 물질인 ‘헥사데카날(HEX)’이 부모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연구가 실렸다.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 연구팀은 헥사데카날이 여성의 공격성은 높이고, 남성의 공격성은 낮춘다고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헥사데카날은 출산 직후부터 만 1세 이전까지의 아기 머리에서 분비되는 무색무취의 물질이다. 성인의 경우 피부 타액 대변 등에서 방출되기도 한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헥사데카날은 쥐에서 스트레스 반응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연구진은 헥사데카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기 위해 21세부터 34세 사이의 성인 127명(남성 67명, 여성 60명)을 모집했다. 이 중 절반에게는 인중에 헥사데카날을 지속적으로 분비하는 작은 접착 물질을 붙이고, 절반에게는 냄새는 동일하지만 헥사데카날이 포함되지 않은 물질을 붙였다. 그리고 난 뒤 참가자들에게 크게 화가 날 수 있는 게임을 시켰다.

보이지 않는 파트너와 협상해 제한된 가상화폐를 나눠갖는 게임이다. 실제 참가자와 대전하는 상대는 컴퓨터로, 전체 금액의 90% 미만을 제안할 경우 무조건 “안돼(NO)”라는 메시지를 띄우도록 설정됐다. 즉 참가자가 돈을 딸 수 없는 구조의 게임이다.

참가자들은 협상이 끝난 뒤, 상대방에게 소음을 통해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다양한 수준의 고통을 표현하는 이모티콘 버튼을 눌러 소음의 크기를 선택할 수 있다. 연구진을 이를 통해 공격성을 측정했다. 그 결과 여성의 경우 헥사데카날에 노출된 참가자가 그렇지 않은 참가자보다 공격성이 19% 높았으며, 남성의 경우 반대로 노출된 참가자의 공격성이 18.5% 낮았다.

연구진은 유사한 게임을 하는 동안 참가자들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찍었다. 그 결과 이전의 실험과 비슷하게 헥사데카날이 여성의 공격성은 13% 높였고, 남성의 공격성은 20% 낮췄다. 연구진은 헥사데카날이 여성의 뇌에서는 공격성을 제어하는 뇌 영역 간의 신경 전달을 줄였고, 남성의 뇌에서는 소통을 촉진시켰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아기의 머리에서 헥사데카날이 분비되는 것은 일종의 생존전략이라고 추정했다. 포유류의 경우 암컷은 새끼를 방어하기 위해 공격성을 사용하는 반면, 수컷은 새끼를 공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고 알려져 있어서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노암 소벨 와이즈만연구소 신경과학연구팀장은 “생후 4일부터 만 1살이 되기 이전의 아기 머리에서 헥사데카날이 다량 분비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추가적인 연구를 통해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더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오늘의 신문 - 2024.04.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