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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크래프트맥주 원조 고에도 "상장 싫다…글로컬기업 될 것"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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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기리 시게하루 고에도브루어리 대표 인터뷰

맥주대회 47회 수상하며 세계 최고 반열에
ESG경영 원조..맥주사업 시작도 폐기 고구마 재활용
"상장하면 눈앞의 이익만 추구…지역사회와 함께할 것"


"방문 전 김치나 치즈 같은 발효식품을 드시지 말아 주십사 부탁드린 건 맥주가 살아있는 생물이기 때문입니다. 호흡에서 나오는 유산균이 맥주의 효모를 오염시킬 수 있거든요."

아사기리 시게하루 고에도(COEDO)브루어리 대표(사진)와 인터뷰에 앞서 받은 안내문에는 "전날과 당일 발효식품 섭취를 피해달라"고 붉은 글씨로 씌어있었다.

지난 18일 일본외신기자센터(FPCJ)의 주선으로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쓰야마시 고에도브루어디 본사에서 만난 아사기리 대표는 "시골의 작은 기업으로 세계의 고객과 연결되는 글로컬(Glocal) 기업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계 첫 고구마 맥주 개발25개국 수출
고에도맥주는 일본 크래프트맥주 시장의 문을 연 브랜드다. 1996년 세계 최초로 고구마를 원료로 만든 맥주 개발에 성공했다. 1997년 독일의 마이스터(맥주장인)를 영입해 5년간 양조기술을 배운 뒤 2006년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 고에도를 출시했다.

고에도는 회사의 본사가 있던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의 별칭이다. 가와고에는 에도시대 도쿄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작은 에도(小江戸·'고에도'로 발음)'로 불린다. 아사기리 대표는 "당시만 해도 맥주는 생맥주잔에 따라 벌컥벌컥 마실 뿐 맥주 고유의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기는 콘셉트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2010년 고구마 맥주 베니아카(紅赤)가 세계 최대 맥주 대회인 유러피언비어스타와 월드비어컵에서 한꺼번에 금상과 은상을 따내며 혜성처럼 떠올랐다. '위험할 정도로 마시기 편안한 맥주'로 호평을 받으면서 세계 25개국에 수출한다.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이 25%를 차지한다.

아사기리 대표는 "일본의 주요 크래프트맥주 업체들이 생산량을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고에도맥주가 상위 5위권에 들어가는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현재 베니아카를 포함해 6종류의 크래프트맥주를 생산한다. 각각의 맥주에 루리(瑠璃), 마리하나(毬花) 갸라(伽羅), 시코쿠(漆黒), 시로(白)와 같이 일본의 전통적인 색감에서 딴 이름을 붙인 것이 특징이다. 베니아카가 11개의 수상 기록을 보유한 것을 포함해 6종류의 맥주가 세계 맥주 대회에서 따낸 상만 47개에 달한다.

문 닫은 대기업 연수원 공장으로 재활용
고에도브루어리는 ESG(환경·사회·기업 지배구조) 경영의 원조이기도 하다. 맥주사업을 시작한 계기도 지역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모태기업인 교도(協同)상사는 1970년대부터 무농약·유기재배법으로 키운 농산물을 유통하던 회사였다. 아무도 유기농업에 주목하지 않던 때였다.

가와고에는 고구마를 많이 생산하는 지역이지만 약 40%는 크기나 모양이 규격외라는 이유로 시장에 유통되지 못하고 버려졌다. 폐기 처분되는 고구마를 상품으로 가공해서 판매하면 지역 농가에 수익원이 되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게 맥주사업이었다. 아사기리 대표는 "고구마로 소주를 만드는 일본 특유의 양조문화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말했다.

2016년 이전한 히가시마쓰야마의 본사 겸 공장도 문을 닫은 대기업 연수원을 재활용했다. 일본의 근대 산업유산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 신축 대신 리모델링을 택했다. 크고 높다란 맥주 탱크들을 건물 안에 집어넣기 위해 벽을 트고 천장을 높이는 수고를 감수했다.

부지의 우물물을 제조용수로 쓰고, 맥주의 원료로 쓰인 맥아와 효모를 사료로 재가공해 인근 축산 농가에 지원한다. 코로나19로 외출을 삼가는 지역 주민을 위해 공장의 잔디밭을 캠핑장으로 개방하고, 신재생에너지인 바이오매스 발전(볏짚, 쌀겨, 폐목재 등을 원료로 가스를 발생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 사업에도 손을 댔다.

"사이타마는 더운 지역이지만 자급자족을 위해 최근에는 호프를 직접 재배하고 있다"고 아사기리 대표는 말했다.
학교를 닮은 본사 공장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맥주 제조 공정을 특별히 공개했다. 일반 방문객은 2층의 유리 너머로만 견학이 가능하다. 1980년대에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은 공장이라기보다 서양의 시골저택을 닮았다.

연수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건물 전체가 학교를 닮았다. 전교생이 모일 수 있는 넓직한 강당이 있고 긴 복도를 따라 강의실이 늘어서 있었다. 문을 열면 책걸상과 칠판 대신 거대한 스테인레스 맥주용기가 번쩍이는 것만 학교와 달랐다. 맥주 원료가 발효되는 구수한 향기도 풍겨왔다.


1973년생인 아사기리 사장은 가와고에에서 나고 자랐다. 1997년 일본 명문 히토쓰바시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가와사키중공업의 해외 수출 담당으로 입사했지만 처가의 가업이었던 협동상사로 전직했다.

그는 "원래 기업을 일으키는데 관심이 많았다"며 "고향에서 농업계의 벤처기업을 키운다는 각오로 회사를 옮겼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와 소득수준의 정체로 일본의 맥주시장은 20년 가까이 정체돼 있다. 일본인 1인당 맥주 소비량이 2008년 47.9리터에서 2017년 40.1리터로 줄었다.

크래프트맥주는 맥주 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부문이다. 2013년 188개였던 크래프트맥주 제조사는 2016년 251개로, 171억엔(약 1750억원)이었던 시장규모는 226억엔으로 커졌다.


주식시장에 상장(IPO)하면 거액의 자금을 유치해 회사를 더욱 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에도브루어리를 비상장회사로 유지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기업가치를 키워나가고 싶습니다. 지역 사회와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상장을 하면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되잖아요. 주주들도 비효율적인 사업을 그만두도록 요구할 테구요. 그건 고에도브루어리의 이념과 맞지 않아요."

사이타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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