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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금지법' 정조준?…美, '대북방송강화법' 발의했다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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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이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의 엄격한 감시 및 검열 정책을 중단하도록 계속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미국의 민주·공화 양당 상원의원들이 지난 17일(현지시간) 한 법안을 발의하며 한 말입니다. 이 법안의 이름은 바로 ‘오토 웜비어 검열·감시법’. 북한에 여행갔다가 선전물을 훔치려했다는 혐의로 북한 정권에 의해 ‘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17개월간 억류됐다가 미국으로 이송된지 엿새 만에 숨진 고(故) 웜비어씨의 4주기를 맞아 발의된 법입니다.
"한·미 간 분명한 입장차 보여주는 것"
웜비어씨의 이름을 딴 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번 법안의 공동발의자 중 한 명인 롭 포트먼 상원의원은 2017년 11월 미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오토 웜비어법’을 공동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앞선 웜비어법은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 및 금융기관이 미국의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었습니다. 이 법은 2019년 미국 국방예산의 근거 법률이 되는 국방수권법의 조항으로까지 포함됩니다.

이번 웜비어법은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을 확대하는 것을 촉구하는 법안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들을 수 있도록 새로운 정보 유입 수단을 개발하고 2018년 태풍으로 손상된 방송 안테나 복구 등에 투자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미국 국제방송처가 관할하는 자유아시아방송(RFA) 등의 방송을 접하는 북한 주민들의 신상이 보호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고 주민들에 대한 북한 정권의 검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민관 협력도 촉구했습니다.

그런데 법안의 문구가 묘합니다. 이 법안은 “북한에 대한 정보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새로운 통신·비통신적 수단을 개발할 것”이라며 통신 수단 뿐 아니라 ‘비통신적’ 수단을 포함합니다. 대북 정보 유입의 대표적인 비통신적 수단은 바로 대북 전단입니다. 지난해 12월 한국 국회에서 통과돼 지난 3월 전격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개정 남북관계발전법)을 겨냥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18일(현지시간) RFA에 “조 바이든 행정부가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 대북전단금지법 문제를 제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양국이 분명 다른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습니다. 이어 “대북 정보 유입을 장려하는 미국 의회의 움직임과 반대로 임기가 1년 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 같다”고도 진단하죠.
한국에선 '재석의원 187명 만장일치'였는데...
대북전단금지법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187명의 만장일치로 통과됩니다. 이 법을 반대한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섰지만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기 위해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시간33분간 필리버스터에 나섭니다. 필리버스터까지 막느냐는 반발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에게 단 30분간의 필리버스터가 허용됐지만 민주당과 정의당 등 범여권 의원 187명의 찬성으로 필리버스터가 강제 종결됩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재석 187명 전원 찬성으로 본회의를 통과합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남북한 접경지대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할 경우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남북 접경지역은 지금까지 국내 탈북민단체를 비롯해 국제사회가 대북 전단을 살포해온 지역입니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해왔기 때문에 접경지역 주민들은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느껴진다며 대북 전단 살포를 강하게 반발해왔습니다. 이 법안을 발의하고 시행한 정부·여당도 “표현의 자유가 생명권에 우선할 수는 없다”며 “북한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라는 국가의 기본책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고 법안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아주 짧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북한이 맞대고 있는 곳이 한국과 북한의 우호국인 중국 두 곳이라는 점을 봤을 때 사실상 전 지역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시킨 것이나 다름없어 국제사회는 크게 반발합니다. 오토 웜비어씨의 아버지인 프레드 웜비어씨도 지난해 12월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독재자나 하는 짓”이라며 “문 대통령이 탈북민을 희생양 삼아 김정은·김여정 남매한테 굽실거리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대북전단금지법의 정반대 버전인 ‘오토 웜비어 검열법’은 미국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토 웜비어씨의 4주기에 맞춰 그의 이름을 딴 법안이라는 점,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함께 발의했다는 점, 바이든 행정부의 ‘인권 외교’에도 합치한다는 점 등이 이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선 대북전단금지법 시행 후 처음으로 대북 전단 살포에 나선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수사하기 위한 서울경찰청 산하 태스크포스(TF)까지 설치됐습니다. 1반·5팀·1실로 구성된 대규모 TF입니다. 정부가 성공적이었다 자부하는 한·미 정상회담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등으로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끈끈한 밀월 관계를 보여온 가운데 북한 인권을 둘러싼 양국의 정반대 접근법이 이 밀월 관계를 해칠까 우려스럽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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