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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는 금슬 좋기로 소문난 70대 부부였다. 슬하에 혼인한 자녀 한 명을 두고 있었던 이들에게 불행이 닥쳤다. A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것이다. B는 갑작스러운 배우자의 사망에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앓고 있던 지병까지 악화되어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다.
B에게는 A로부터 유증받은 반포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이었다. 이에 자녀와 사위는 "추후 상속 시 막대한 세금이 발생할 수 있으니 지금 미리 증여하면, 간병비·병원비·생활비 등을 책임지겠다"고 제안했다. B는 이 말을 믿고 아파트를 증여해도 될까?
서울 강남 아파트 15채를 상속해야 50%의 최고세율이 적용되던 시절에 정해진 상속세율과 누진 과표 구간은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이제는 서울 중심부 아파트 한 채만으로도 상속세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시대가 됐다. 누구에게나 상속은 언젠가 닥칠 일이고, 평생 이룬 재산에 대한 상속세 부담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부동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기에, '미리 증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될 수 있다'는 생각은 충분히 타당하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자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증여받은 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오히려 관계가 멀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콜마그룹 부자 간의 증여주식 반환 소송이 대표적이다. 창업주 윤 회장은 여전히 그룹 회장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콜마홀딩스 주식을 자녀들에게 증여한 이후 경영에 대한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사례를 접하며, 많은 부모들은 '재산은 마지막까지 직접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와의 약속을 성실히 지키며, 생전 증여는 절세와 분쟁 방지를 위해 실질적인 장점이 있다. 다만 자산을 이전하기 전, 법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법상 증여계약은 서면으로 증여의 의사가 표시되지 않은 경우 언제든지 해제할 수 있다. 수증자가 증여자 또는 그 배우자나 직계혈족에 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증여계약 후 증여자의 재산상태가 변경되어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도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증여계약에는 이처럼 일정한 사유가 있으면 증여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특수한 해제권이 인정된다. 다만, 위와 같은 해제권을 행사하더라도 이미 이행된 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와 달리, 부담부증여의 경우 상대방에게 일정한 급부의무를 부담하도록 하기에 쌍무계약에 관한 법리가 준용되어 계약을 해제하면 이미 이행된 부분도 되돌릴 수 있다. 대법원도 같은 취지에서, "부담부증여에 있어서는 쌍무계약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어 부담의무 있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비록 증여계약이 이행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대법원 1996. 1. 26. 선고 95다43358 판결)"고 판시하고 있다.
위 사례에서 자녀가 간병비·병원비·생활비를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부담'으로 설정하고, B가 이를 조건으로 아파트를 증여했다면, 자녀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B는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아파트 소유권을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증여를 소위 '효도계약'이라 한다.
효도계약을 잘 설계하면, 부모는 생전에 자녀로부터 돌봄을 받으며 여생을 보낼 수 있고, 상속세를 절세하면서 미리 재산을 이전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콜마그룹 사태에서도 핵심은, 윤 회장과 자녀들 사이에 있었던 회사 경영에 관한 합의가 콜마홀딩스 주식 증여의 '부담'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만약, 그 합의가 부담으로 인정되고, 그러한 부담이 증여계약의 목적 달성에 중요한 내용임에도 자녀가 이를 위반했다면, 윤회장은 이를 이유로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그 반환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실무에서는 효도계약 위반을 이유로 소가 제기되어도, 부모가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효도계약서에 자녀들의 의무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거나, 그 의무가 증여계약의 목적 달성에 중요한 반대급부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효도계약을 준비할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향후 분쟁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보다 안전하고 신속한 자산 승계 방식으로 신탁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신탁은 수탁자를 통해 수익자의 의무 이행 여부를 점검한 뒤 재산을 이전할 수 있으므로, 효도계약의 목적을 보다 안전하게 실현할 수 있다. 예컨대, 부담부증여는 자녀가 부담을 이행하지 않아 증여계약을 해제하더라도 자녀가 재산반환을 거부하면 소송을 해야만 재산을 회복할 수 있는데, 신탁은 수탁자가 자녀의 부담 불이행을 판단해서 재산 이전 자체를 차단할 수 있다. 특히, 신탁선언 방식을 활용하면, 부모가 스스로 수탁자가 되므로 신탁보수도 대폭 절감할 수 있다.
재산 증여는 단순히 세금을 줄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와 책임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효도계약이든 신탁제도든, 법적 안전장치를 철저히 마련하되 무엇보다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