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기는 경제학자와 애널리스트가 포진했다는 월스트리트에서도 시장 전망은 틀리기 일쑤입니다. 이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시장의 방향을 정확히 맞추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따금 한 번씩 이른바 '작두를 탔다'고 할 만큼 적중률이 높은 시장 전망을 내놓는 애널리스트들이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올 3월 골드만삭스에서 시타델로 자리를 옮긴 스캇 럽너 주식·파생상품 전략 총괄이 그 중 한 명입니다. 지난해 7월 말~8월 초 조정, 연말 랠리, 올 2월 조정 등을 시의적절하게 예측했던 그의 시장 분석과 전망은 많은 투자자들이 찾아 읽는 리포트가 됐습니다.

그런 럽너가 이직 후 약 반 년만에 16일(현지시간) 새 시장 전망을 내놨습니다. "내가 돌아왔다(I'm back)!"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보고서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① 미국 증시 랠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기술주, 소프트웨어, AI(인공지능) 혁신 기업에 대해 강세 전망을 유지한다. ② 하지만, 8월 중순부터는 9월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
근거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개인 투자자의 '하락 시 매수(buy the dip·바이더딥)'가 미국 주식 랠리를 강력하게 떠받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가가 하락할 때 누가 더 먼저 사느냐(dip alpha·딥 알파)' 경쟁마저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시타델의 리테일 트레이딩 흐름을 보면 16일 기준 개인투자자들은 14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했고, 상호관세의 충격으로 시장이 급락했던 4월 초 이후 13주 중 11주 동안 현물 주식을 순매수했습니다. 5월 이후 강세장은 바로 이 개인 투자자들이 이끌었죠.
이 자금은 지금도 주식 시장에 유입되고 있습니다. 럽너에 따르면 지난 2년간 개인 투자자들의 월별 미국 주식 투자 자금은 7월에 가장 규모가 컸고, 올해도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이런 자금 흐름은 9월에 둔화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현재까지 이런 '리테일 머니'가 주로 산 주식들은 AI, 고변동성, 암호화폐, IPO(신규 상장), 레버리지 ETF, 역모멘텀 테마 주식들이었다고 합니다.
럽너는 "기관 투자자들은 '시장 대비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 즉 FOMU(Fear of Materially Underperforming the benchmark)가 있다"고 말합니다. 2분기 실적 시즌이 본격화된 지금, 시장의 낮은 기대치를 상회하는 실적이 나와 주가가 상승하는 상황이 되면 기관 자금들이 '어쩔 수 없이' 매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럽너는 알고리즘과 시스템 전략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자금들이 주식 비중을 더 늘릴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4월 상호관세 발표 직후 변동성이 치솟고 하락 베팅이 쏠렸던 시장이 6~7월이 되면서 안정화됐기 때문입니다. 미래 변동성 기대가 지금보다 더 높은지, 낮은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기간구조(term structure)가 플러스로 돌아오고, 옵션 시장에서 풋옵션이 콜옵션 대비 얼마나 더 높은 프리미엄을 갖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스큐가 하락 추세를 보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이런 변동성 지표들은 변동성 조절 전략, 리스크 패리티 전략 등 시스템 전략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펀드들의 주식 매수·매도를 결정하는 주요 지표이기도 합니다. 가령 변동성 조절 전략 펀드는 포트폴리오의 변동성 목표치를 정해두고 시장 변동성이 그보다 높아지면 자동으로 주식 비중을 줄이고(주식 매도), 현금 또는 안전자산 비중을 높이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그런데 최근 시장 변동성이 안정되면서 이런 전략 펀드들이 다시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겁니다.
럽너에 따르면 이런 변동성 전략 펀드들은 최근 들어 주식 비중을 높여 왔지만 아직 투자 여력이 있습니다. 그는 "일 변동성 10% 타깃 전략은 현재 주식 노출도가 연중 최고점 대비 35% 낮은 수준"이라면서 "시스템 전략 펀드들이 향후 한 달 더 (주식 비중을 늘릴) 총알(ammo)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선물·옵션을 이용해 시장 트렌드를 따라 자동으로 사고파는 추세추종 전략, 이른바 CTA도 최근 상승장을 따라 주식 비중을 늘려 왔습니다. 하지만 럽너는 "아직 포지션이 극단적인 수준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CTA 자금도 더 증시에 들어올 여력이 남았다는 겁니다.

이뿐 아니라 CTA가 자동으로 주식을 매도하는 '트리거'가 되는 S&P 500 선물 가격은 6,003, 나스닥 선물 가격은 21,861입니다. 럽너는 "이들 전략이 강제로 주식을 팔아야 하는 가격대와 현 수준은 격차가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럽너는 "8월은 전통적으로 자사주 매입 활동이 강한 달"이라며 "올해 1조 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이 예상되는 기업들은 미국 주식의 최대 매수자"라고 했습니다.
특히 이번 분기는 실적에 대한 기대가 낮은 만큼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하기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입니다. 특히 대형 기업에 긍정적인 수급 영향이 기대됩니다.
이에 대비해 8월 중순쯤엔 9월 말을 대비해 주가지수 헤지를 추가할 것을 추천합니다. 그 시점이 되면 시스템 기반 기관 투자자들의 주식 비중도 꽉 차 매수세가 제한되고, 다른 투자자들도 4분기에 대비해 리스크 노출을 줄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럽너는 "낮은 변동성 수준을 이용해 9월 이후 거시경제 이벤트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은 VIX(변동성 지수)가 낮아 옵션 가격이 저렴한 만큼 8월 중순쯤부터는 하락에 대비한 인덱스 풋옵션을 사두면 좋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절적으로도 9월은 1년 중 미국 증시 수익률이 가장 안 좋은 달이었습니다. 9월은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결정과 경제 전망, 점도표가 발표되는 시기이자 미 연방정부 셧다운 리스크, 미 재무부 국채 발행 계획 등 굵직한 거시경제 이벤트가 많습니다. 휴가를 보내고 온 투자자들이 연말 전략을 준비하면서 위험 관리를 강화하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럽너에 따르면 노동절 다음날인 9월 2일은 지난 100년 간 9월 중 주가가 가장 높았던 날이라고 합니다. 그때 고점을 찍고 하락하는 흐름이 많이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또한 하나의 의견일 뿐, 맹신해선 안 됩니다. 다만 지금 시장에 버블이 쌓이고 있으며 랠리가 지속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그 전에 더 높은 정점을 향한 '과열 급등(melt-up·멜트업)' 장세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럽너의 말처럼 내릴 때 내리더라도, 좀더 오를 수 있다는 얘기죠. 상승장을 즐기되, 하락장에 대비하는 투자자의 기본 자세를 다시 한 번 시험해볼 때가 오고 있습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