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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 날렸어요"…중고거래하다 전재산 잃은 20대 '눈물'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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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원 증발…'포인트 결제' 신종 사기 수법
'개인적 사정·반값' 강조, 실제로는 저가 중국산
"공식 결제 수단 활용이 피해 예방의 지름길”

"정신 차리고 보니 전 재산을 잃었어요. 퇴근하는 길에 주저앉아 오열할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사회초년생 A씨(26)는 지난 15일 중고거래를 통해 약 5000만원의 전 재산을 한순간에 사기당했다고 호소했다. 범행은 치밀하게 이뤄졌고 그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피해 발생까지 걸린 시간은 단 3시간 남짓. A씨는 "평소에 중고거래를 자주 하지도 않는데, 마치 홀린 듯 빠져들었다"고 털어놨다.

이번 사건은 기존의 가짜 판매자를 가장한 사기와 달리 '구매자'를 사칭해 피해자를 현혹시키는 신종 수법이다.

최근 당근,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 중고거래 플랫폼을 중심으로 유사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외부 URL을 '안전 거래 링크'라고 속여 접근하며, 일정 금액 입금을 유도한 뒤 이를 다시 빼려면 같은 금액을 또 넣어야 한다는 식의 반복적인 입금을 요구한다. 피해 규모는 수백만원부터 억대까지 다양하다.
◇"포인트로 결제하겠다" 접근…명품 가방 거래가 악몽으로
17일 한경닷컴의 취재를 종합하면 사건의 시작은 A씨가 중고 명품 가방을 당근마켓에 게시하면서였다. 곧이어 구매 의사를 밝힌 한 사용자가 "업무용 번호라 연락이 어렵다"며 개인 번호를 남기고 사라졌다.

이후 문자로 연락을 취하 A씨는 구매자가 "포인트가 많이 남아있다. 자주 이용하는 쇼핑몰에 등록해주면 바로 결제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A씨는 라이브마켓이라는 외부 플랫폼 링크를 받아 접속해 물건을 등록했고, 상대방은 "결제했다"며 출금 요청을 하면 3분 안에 입금된다고 안내했다.

그러나 출금 지연이 이어졌고, 고객센터로의 연락을 유도했다. 고객센터에서는 A씨에게 "계좌번호가 틀려 본인 인증을 위해 동일 금액을 입금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A씨는 처음에는 220만원을 입금했고, 이어 "수수료가 누락됐다", "안전 거래 인증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총 7차례나 반복 입금을 유도했다,

마지막엔 "법인 수표 출금이 필요하니 5000만원에 맞춰 입금해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고 총 피해금은 4780만원에 달했다.

이 모든 과정은 지난 15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단 3시간 동안 벌어졌다. 피해자가 의심을 품고 전화를 걸자, 가해자는 오히려 "계속 전화하면 불편하다. 배송 외엔 연락하지 마라"고 차단했다
◇"파혼해서 싸게 팝니다"…그럴싸한 사연 뒤에 숨은 '사기'
이외에도 '파혼', '이별', '폐업' 등 감정적이고 긴박한 사연을 내세워 소비자의 경계심을 무너뜨린 뒤, 중국산 가짜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팔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판매해 돈만 가로채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표적인 문구로는 "파혼해서 싸게 팝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정리합니다", "폐업으로 인해 미개봉 신제품 급히 팝니다" 등이 있다. 제품보다는 '개인 사정'을 강조해 신뢰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주로 10만 원 이상 고가의 전자기기나 가전제품을 중고 사이트에 "정가 대비 반값 이하로 급처합니다"라며 올려 소비자의 시선을 끈다.

이어 같은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에 일부러 고가로 등록해 두고, 정가가 비싼 것처럼 속여 소비자가 '득템했다'고 믿게 만드는 수법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3만~4만 원대의 중국산 저가 제품이거나 실물조차 존재하지 않는 '유령 상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거래 하자더니 문고리에?"…비대면만 고집하는 사기 수법
공통된 특징은 철저히 '비대면 거래'만을 고집한다는 점이다. 택배 거래만 가능하다며 직거래 요청은 온갖 핑계를 대며 거절하거나 문고리 거래를 유도하는 식이다. 판매자는 '입금 확인 후 발송'을 원칙으로 내세우며 신뢰를 유도한다.

'문고리 거래'를 빙자한 신종 수법은 구매자와 직거래 약속을 잡은 후 구매자가 직거래 현장에 도착하면 판매자는 '급한 일이 생겼다'며 문고리 거래를 강요한다.

판매자는 문고리에 제품을 걸어놓은 사진을 보낸 뒤 "바빠서 대면은 어렵다. 문 앞에 걸어놨으니 도착하면 입금해달라. 확인 후 현관 비밀번호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때 판매자가 보내준 현관 사진이나 동호수 정보가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는 남의 집 문고리에 찍힌 가짜 사진을 이용하거나, 공동현관 비밀번호만 알려주고 특정 동호수를 알려주며 구매자를 현장으로 유도하는 것이다.

구매자는 왕복 시간과 노력 때문에 그냥 포기하기보다는 결국 입금하게 되지만, 이후 판매자는 잠적한다. 피해자들의 호소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40대 직장인 B씨는 "정말 집 앞에 있는 줄 알고 갔고 입금까지 했는데 연락이 끊겼다"며 "해당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해 겨우 공동현관을 열고 들어갔지만 해당 주소엔 '그런 물건도, 그런 사람도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고 분노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20대 대학생 D씨는 "택배비라도 아껴보겠다는 마음에 직거래를 택했는데, 문고리 거래라는 말에 처음엔 의심도 하지 않았다"며 "처음엔 실제 사진인 줄 알고 믿었지만, 결국 사기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말했다.
◇"이용자 주의 필요…플랫폼도 보다 적극적 보호 나서야"
전문가들은 최근 중고거래 사기 수법이 더욱 정교하고, 감정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단순한 금전 요구를 넘어, 판매자의 사연을 내세워 구매자의 경계심을 허무는 방식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용자들은 과도하게 저렴한 가격에 현혹되거나, 평소 같으면 놓치지 않았을 미심쩍은 부분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며 "거래 과정에서 금액이 비정상적으로 낮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사항이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다시 한 번 의심해보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피해자 개인의 부주의만을 탓하기보다는, 중고거래 플랫폼이 이러한 사기 행각에 사용자가 휘말리지 않도록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다양화되고 있는 사기 수법과 거래 방식에 대해 플랫폼 차원에서 면밀히 분석하고, 사용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사전적·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당근 관계자는 "외부 링크 공유 시 주의 메시지가 자동으로 전송되고, 피싱 의심 URL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의 협업을 통해 자동 영구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개인 연락처나 계좌번호를 통해 선입금을 유도하는 경우에도 경고 메시지가 뜨도록 시스템을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가급적 앱 내 안심결제 기능인 '당근페이'를 활용해 거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만일 사기 피해가 발생할 경우 ‘안심보상 제도’를 통해 일정 수준 보상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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