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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같은 '위키드' 뒤에 또 다른 마법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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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만에 내한한 초록마녀 '위키드'
닉 뉴이 기술감독 손끝에서 마법 구현
"1막에선 한 번의 암전 없이 무대전환"

초록마녀가 한국에 돌아왔다. 에메랄드빛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위키드’의 마법 같은 순간을 만날 시간. 위키드의 마법을 현실로 구현하는 무대 뒤 ‘숨은 마법사’, 기술감독의 손길을 따라 위키드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부슬비가 내리던 지난 13일 오후. 이날 서울 한남동 한강진역 일대는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초록 우산, 초록 티셔츠, 초록 치마 등 하나쯤은 초록색을 걸친 인파는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다. 13년 만에 내한한 뮤지컬 ‘위키드’가 공연 중인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이었다.

‘위키드’는 시골마을 소녀 도로시의 모험을 다룬 판타지 고전소설 <오즈의 마법사>를 비튼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도로시가 태풍에 휩쓸려 마법의 세계인 오즈로 건너오기 전, 사악한 서쪽 마녀로 알려진 초록색 피부의 ‘엘파바’와 인기 많은 금발 마녀 ‘글린다’의 이야기를 그린다.

‘위키드’의 서사는 지난해 아리아나 그란데와 신시아 에리보가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의 흥행 이후 많은 관객들에게 익숙해졌다. 남들과는 다른 외모로 평생 차별과 비난을 견뎌야 했던 엘파바가 ‘악의 표상’으로 마녀화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중심이 된다. 여기에 그녀를 이해하는 글린다와의 우정이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브로드웨이 옮긴 듯한 생동감

뮤지컬은 영화와 달리 결말을 담고 있다. 영화 ‘위키드’는 엘파바가 마법사 세력을 피해 지팡이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에서 끝나지만, 뮤지컬은 2막에서 이후 이야기가 전개된다. 오는 11월 개봉하는 영화 ‘위키드’의 2편 ‘위키드: 포 굿’(Wicked: For Good)에 앞서 궁금증을 미리 해소할 수 있는 셈이다. 뮤지컬과 영화는 줄거리가 대부분 유사하다. 하지만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경우 엘파바가 동생 네사로즈를 따라갔다가 쉬즈대학교에 우연히 입학한다는 설정으로 뮤지컬과 차이가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엘파바 역은 셰리든 아담스, 글린다 역은 코트니 몬스마가 맡았다. 다수의 뮤지컬에 참여한 경력자답게 두 배우 모두 각 역할에 어울리는 음색과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마치 브로드웨이 공연장에 있는 듯한 기분에 빠져들게 했다. 특히 아무리 잘난체를 해도 미워할 수 없는 글린다 역의 몬스마는 잔망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었다. 참고로 엘파바 역에는 조이 코핀저가 얼터네이트(일부 회차에서 주연 배우 대신 연기하는 배우)를 맡는데, 캐스팅 정보는 당일 공연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뮤지컬은 생동감 측면에서도 영화를 압도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오즈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거대한 ‘타임 드래곤’이 무대 위에서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기세로 날개를 펼치고 있다. 공연이 막을 올리면 버블머신을 탄 글린다가 둥둥 떠다니고, 1막이 끝날 무렵에는 빗자루를 탄 엘파바가 그 유명한 넘버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를 부르며 무대 위로 치솟는다. 오즈의 세계를 무대에서 그려낸 유진 리 무대 디자이너는 2004년 ‘위키드’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마법처럼 펼쳐지는 무대 전환

아무리 설계가 훌륭해도 이를 무대에서 구현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작업이다. 위키드의 황홀한 무대 디자인이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대 뒤 수많은 스태프들의 손길 덕분이다. ‘위키드’ 무대 세트는 설치에만 3주가량 소요된다. 조명, 음향, 자동화 장비 등 전체 세트 규모도 어마어마하다. ‘위키드’ 투어팀은 싱가포르에서 건너올 때 무대 세트를 40피트(약 12m 길이)짜리 해상 컨테이너 22개에 나눠 실어야 했다.



기술팀은 약 한 달전부터 한국을 찾아 공연장을 파악하고 무대를 준비해왔다. 닉 뉴이 기술감독은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공연장의 윙 스페이스(무대 양 옆의 공간)가 넓어 무대 운영이 원활하고, 공연장 구조도 작품과 잘 어울린다”며 “모든 리깅(무대 장비를 천장에 매는 것)과 장치의 동선을 철저히 계획하고 리허설을 통해 배우와 스태프의 안전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뉴이 감독은 ‘캣츠’ ‘레 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등 대형 뮤지컬 무대에 참여한 베테랑으로, ‘위키드’ 브로드웨이 초연 2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월드 투어 전 기간에 참여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무대를 보는 것도 ‘위키드’의 관람 포인트다. 뉴이 감독은 “1막 전체가 단 한 번의 암전 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며 “모든 전환은 무대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무대 뒤에서도 정교한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1막 동안 무대팀은 무대 위 배우와 세트의 움직임에 맞춰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무대 위 모든 움직임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리는 부분이다. “작품 전체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지만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장면은 복잡한 무대 전환이 나오는 에메랄드 시티 입성입니다. 엘파바와 글린다가 에메랄드 시티에 입성한 뒤 위즈오매니아 공연을 거쳐 마법사의 방으로 이동하는 일련의 무대 전환이 단 2분 만에 이뤄집니다.”

타임드래곤은 어떻게 움직이나?



가장 까다로운 무대 작업으로는 프로시니엄(무대와 객석을 구분하는 액자 모양의 건축 구조)과 타임 드래곤 설치를 꼽았다. “제 역할은 ‘위키드’ 무대를 오리지널 프로덕션과 동일한 퀄리티로 유지하는 것입니다. 프로시니엄은 무대 위에서 조립한 뒤 1톤짜리 모터 7대를 이용해 상부로 들어올려야 합니다. 작품의 시각적 중심 요소인 만큼 안전과 정밀한 위치 조정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입합니다.”

무대 2층 높이에서 객석을 내려다보는 타임 드래곤도 핵심 장치다. 전체 길이가 12.4m에 달하는 이 용은 마법이 펼쳐질 때마다 하얀 콧김을 내뿜으며 몸부림친다. “무대 위 ‘타임 드래곤’을 유심히 봐주세요. 무대에서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드래곤도 함께 반응합니다. 무대 한켠에 숨어있는 숙련된 스태프가 마치 거대한 퍼펫을 움직이듯 조종하고 있죠.”



타임 드래곤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치는 모두 자동화 설비로 움직인다. 뉴이 감독은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무대 세트가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배우는 물론 원숭이와 마녀까지 공중에 떠오를 수 있다”며 “기술은 어디까지나 서사와 무대 디자인을 뒷받침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관객에게는 그 존재를 느끼게 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위키드’는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 10월 26일까지 공연한다. 이후 부산 드림씨어터(11월), 대구 계명아트센터(내년 1월)에서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뉴이 감독은 ‘위키드’ 관람을 권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키드는 역경을 이겨내는 감동적인 서사를 지닌, 스토리의 힘이 강한 작품이에요. 이미 공연을 보신 분들도 다시 오시면 처음 보는 듯한 새로운 디테일과 장면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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