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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나약해서?"…'픽업문화' 꼬집은 반응에 이은지도 '깜짝'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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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닿을 거리도 픽업하는 시대

'픽업 문화'…과잉보호vs안전의무 논쟁
대학, 직장, 군대까지 번진 부모의 개입
유괴 급증? '발각률' 높아졌을 가능성
헬리콥터 부모, 성인 자녀의 사회 적응력 망쳐


16일 오후 12시 30분,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 이곳은 하교 시간을 맞아 부모들로 북적였다. 조부모, 엄마,아빠, 학원선생님 뿐만 아니라 부부가 함께 온 경우까지 다양했다.

초등학교 옆 놀이터 역시 아이들을 지켜보는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사실상 '아이 한 명당 보호자 한 명' 꼴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가방을 대신 메고, 손을 꼭 잡은 채 학교를 떠났다.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데리러 온 한 부부는 "요즘은 차도 많고,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데리러 오게 된다"며 "아이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험해져서 그렇다. 오히려 아이 얼굴을 하루에 한 번 더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70대 조모는 초등학교 1학년 손자의 하교길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는 "몇 학년까지 픽업해야 한다는 정해진 기준은 없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데리고 다닐 생각"이라며 "길가에 차가 너무 많고, 사고가 나면 결국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 다른 사람한테 맡기기도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픽업 문화'는 학군 경쟁이 치열한 서울 일부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경기 김포에서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키우는 정모 씨(29)는 "나는 아이를 1학년 때부터 혼자 등하교하게 했지만, 출근길에 학교 앞을 지나가다 보면 교문까지 데려다주고, 계단 올라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며 인사하는 부모들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측에서 정문 앞 차량 진입을 제한하고 있지만, 아침마다 차들이 꽤 많다"며 "보호자들의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초등학생 뿐 아니라 중학생 고등학생들 또한 부모들이 등하교길과 학원길을 함께한다.

중학교 1학년 이모 군(12)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어머니가 항상 학교 앞에서 기다리셨다.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편했다"며 "지금은 중학생이지만 여전히 부모가 학교 앞으로 데리러 오는 친구들도 있다. 대부분 학교가 끝난 뒤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한 것인데, 나도 학원에는 차를 타고 간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 김 모씨는 "우리 학교는 스쿨버스가 있어 학부모가 많이 안오긴하지만 그럼에도 하루에 6~7대는 무조건 줄지어서 학교앞에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픽업 문화' 관련한 이은지 유튜브 영상 화제

이러한 '픽업 문화'는 개그우먼 이은지의 유튜브 채널 '은지랑 이은지'에 지난 10일 공개된 길거리 인터뷰 영상에 담기며 주목받기도 했다.

이은지는 한 학부모와의 대화 도중 "내 조카가 8살인데, 우리 어릴 땐 이러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은 학교를 데리러 가더라"며 "우리는 강하게 컸다. 나는 초등학교가 집에서 꽤 멀었는데, 1학년 때도 30분을 걸어 다녔다"고 회상했다.

해당 영상 자막에는 '80~90년대생 특: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음'이라는 문구가 삽입돼, 세대 간 인식 차를 드러냈다.

이은지는 이어 학부모의 답변에 "애들이 나약해져서?"라고 되물으면서도 "왜 이렇게 된 걸까"라고 양육 문화에 대한 궁금증을 드러냈다.

그는 "그냥 그런 거 아닐까, 다들 데리러 가니까"라며 조심스레 말을 이어갔다.
◇유난인가, 불안인가…'픽업문화' 두고 엇갈린 세대 반응
픽업문화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는 각 세대의 통학 경험과 인식 차이를 드러내는 반응들이 이어졌다. 일부는 "우리는 유치원도 혼자 다녔다. 폰도 CCTV도 없던 시절이 더 위험했다", "요즘 중·고등학생까지 데리러 오는 건 유난이다", "이래서 아이들이 커서 사회에서 1인분도 못 한다", "혼자 영화 보냈다고 방임이라는 소문이 돌다니, 정말 문제"라며 과잉보호를 비판했다.

반면 "차량 증가와 주차 문제 등 물리적 위험이 커졌다", "뉴스를 보면 아동 청소년 대상 유괴 시도나 성범죄도 여전히 많다", "우리 때 바바리맨 등 이상한 사람들 많았다. 그래서 내 아이는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있다"는 반박도 있었다.

한 직장인은 "이젠 픽업이 문화가 됐기 때문에, 내 아이만 혼자 가게 하면 '부모가 없나 보다'는 시선이 오히려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더라"고 말했다.

실제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13세 미만 아동 대상 강력범죄는 2019년 1514건에서 2023년 1704건으로 13% 증가했다.

특히 유괴는 같은 기간 138건에서 204건으로 48%나 늘었다. 숫자는 확실히 늘었지만, 전문가들은 CCTV·신고 체계 등으로 인해 '발각률'이 높아졌을 뿐, 실제로 범죄율 차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거라고 분석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실제 범죄량은 과거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CCTV, 신고 시스템 등으로 인해 범죄가 더 잘 포착되고 체포 가능성도 높아졌다"며 "이로 인해 통계상 발생률은 높아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엔 유튜브, TV 등에서 범죄를 다룬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고, 뉴스도 많아졌다"며 "이런 정보의 과잉이 학부모에게 '범죄가 더 많아졌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그 결과 범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커지고, 자녀의 안전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 이런 흐름이 학교의 '픽업 문화'나 보호 중심 행태로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학·직장·군대 까지 번진 부모의 개입

자녀의 일상에 밀착해 개입하는 '픽업 문화'는 이제 학교 앞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학은 물론, 직장과 군대까지 보호자의 직접 개입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지난해 중앙일보가 국내 100대 기업(금융·지주 포함) 인사담당자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5%(14명)가 "직원 가족으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호자 개입이 청년들의 자율성과 독립성 문제로 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한 신입사원의 어머니가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지각하지 않게 아침에 깨워달라", "업무 시에는 '부탁드립니다'라는 표현을 꼭 써달라", "왜 일을 안 시키느냐,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소하겠다"는 요구를 했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됐다.

이 글에 공감한 또 다른 누리꾼은 "내가 사수였는데 어머님께 직접 전화가 왔다"며 "자녀가 공부하느라 20분 늦었다고 ‘왜 퇴근을 늦게 시키냐’, ‘밥은 챙겨주냐’는 말을 들었다"고 경험담을 전했다.

서울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도 조교에게 학부모가 직접 메일을 보내 "우리 아이는 영재고 출신인데 C학점은 말이 안 된다"며 성적 상향을 요구한 사례도 논란이 됐다.

군대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포착된다. 한 누리꾼은 "남동생이 훈련소에 입소한 뒤, 대신 부모 단톡방에 들어갔는데 '우리 애 이불 한 장 더 주세요', '친구 잘 사귀게 도와주세요' 같은 요청이 수시로 올라왔다"고 전했다.
◇전문가 "자녀 보호 본능 이해하지만, 독립심 억제 부작용도"
물론 이 같은 현상은 '자녀를 향한 보호 본능'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만한 측면도 있다. 사회는 점점 불안정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청년 세대의 자립성, 문제 해결 능력, 성인으로서의 경계 설정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부모가 체감하는 불안과 정보 과잉 노출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보호가 아이의 자율성과 독립심을 해친다고 지적한다.

권일남 명지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는 "우리가 자랐을 당시와 지금의 사회적 환경이 달라졌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현재는 안전 사각지대가 넓어지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약화됐고, 그로 인해 부모가 자녀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일이 늘어났다"며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보호가 아이의 독립심과 자립심을 억제할 수 있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자녀들이 학습하고 교육받는 과정에서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게 되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하고 스케줄을 관리하며 자기주도적으로 뭔가를 기획하는 능력을 기르기 어려워진다"며 "헬리콥터 부모 현상을 학대의 일종으로 보고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녀를 과도하게 통제하고 보호하려는 경향은 결국 대학교, 심지어 직장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이런 사례가 늘어났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고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동관련 기관 관계자는 "부모의 과잉 보호는 자녀가 스스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억제하고, 독립심을 제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최근에는 대학생활 전반을 부모가 코치하거나 개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작용한 결과로, 성인이 된 자녀 곁에서 부모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그로 인해 부모도, 자녀도 안심하지 못하는 불안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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