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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냐, 물가냐…통수권자와 중앙銀 총재간 충돌 해법은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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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韓·유럽 등 세계경제
성장률 둔화·물가 상승
준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정부는 성장률에 집중
트럼프 등 금리인하 요구

중앙銀은 물가에 주목
인플레 염두해 속도조절

최근 들어 정치권이 통화정책을 비롯해 금융에 미치는 영향, 즉 ‘폴리티파이’(politifi·politics와 finance의 합성어로 밈 코인에서 유래) 현상이 뚜렷하다. 더 우려되는 것은 경기 진단과 정책 처방을 놓고 각국 통수권자와 중앙은행 총재 간 충돌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를 보면 작년 4분기 성장률이 2.3%로 직전 분기 3.1%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9월 2.4%에서 올해 1월 3%대로 상승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볼 수 없으나 이에 준하는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도 차가 있지만 유럽, 일본, 한국 경제 등도 마찬가지다.

준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는 성장과 물가 중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따라 경기 진단부터 달라진다. 전자를 중시하는 통수권자는 “경기가 침체 혹은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물가 안정이 최우선 목표인 중앙은행 총재는 “인플레이션 국면”이라고 반박한다.

경기 진단이 다르면 정책 처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통수권자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는 작년부터 추진해 온 ‘피벗’(통화정책 전환)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마무리해야 한다고 거부한다. 성장률 둔화와 물가 상승으로 경제 고통이 날로 심해지는 국민은 “이 상황에서 충돌을 벌일 때냐”고 불만을 터트린다.

가장 심한 미국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금리를 즉각 대폭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점에 열린 올해 첫 중앙은행(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제롬 파월 Fed 의장은 금리를 동결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발표된 이후 트럼프는 금리를 내릴 것을 또 주장했으나 의회 증언에 참석한 파월은 피벗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정책 충돌을 면하기 위해 트럼프의 금리 인하 요구를 수용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최근처럼 관세 부과를 남발한 1차 세계대전 직후로 되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당시 스무트 홀리법으로 상징되는 극단적 보호 조치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Fed는 금리를 내려 경기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1차 대전 후유증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곧바로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

당황한 매리너 에클스 당시 Fed 의장은 성급하게 금리를 대폭 올렸지만 오히려 미국 경제를 ‘대공황’이란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Fed 역사상 최대 치욕으로 평가받는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그때까지 주류 경제학이던 고전학파는 Fed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겼더라면 대공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통화정책 무력화 명제’까지 나올 정도로 무기력한 Fed를 구해낸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도한 ‘뉴딜 정책’이다. 만성적인 초과공급 여건에서 정부 주도로 테네시강 유역 개발 등을 통해 총수요를 진작시켜 대공황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총수요 관리 대책의 근거가 된 케인스 이론이 탄생했다.

집권 2기 트럼프노믹스는 금리 인하 요구 외에 관세, 불법 이민 색출에 따른 임금 상승, 뉴딜 정책 등 인플레이션 요인이 많다.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그 답은 트럼프 대통령 집무실에 걸려 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경제정책인 레이거노믹스에서 찾을 수 있다.

2차 오일쇼크 이후 미국 경제는 지금보다 더 심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빠졌다. 정책 목표와 수단 수를 같이 가져가는 ‘틴버겐 정리’(Tinbergen’s theorem)에 따라 경기부양은 재정정책, 물가안정은 통화정책이 담당했으나 정책 충돌이 발생했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재정지출은 물가를 자극하고 이를 잡으려는 추가 금리 인상은 경기를 침체시켰다.

깊은 고민에 처한 레이건 정부에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 ‘래퍼 곡선’(Laffer’ curve)에 근거한 처방이다. 트럼프 집권 2기에 한때 재무장관 후보로 거론된 아서 래퍼 전 시카고대 교수는 1980년대 초 미국 경제처럼 세율과 세수 간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 지대에 놓여 있을 때는 세율을 낮춰 경제 의욕을 북돋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공급 곡선(AS·노동시장과 생산함수로 도출)과 총수요 곡선(AD·투자와 저축을 의미하는 ‘IS 곡선’, 유동성 선호와 화폐 공급을 의미하는 ‘LM 곡선’으로 도출) 이론으로 보면 보다 명확하게 나타난다. 감세로 총공급 곡선이 우측으로 이동(AS1→AS2)해야 성장률이 올라가고 물가가 하락해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서 탈출할 수 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트럼프 정부가 처한 여건은 훨씬 복잡하다. 경기 진단과 금리 인하를 놓고 벌어지는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 충돌은 앞으로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어느 때보다 ‘리스크 관리’와 ‘균형의 미학’을 발휘해야 할 때다
최근 들어 정치권이 통화정책을 비롯해 금융에 미치는 영향, 즉 ‘폴리티파이’(politifi·politics와 finance의 합성어로 밈 코인에서 유래)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