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기사

유럽 경제와 독일 총선

글자작게 글자크게

유럽연합(EU)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는 독일이다. 2023년 기준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로 프랑스(16%)와 이탈리아(12%)에 앞서 있다. 인구에 비례해 배분되는 유럽의회 의석도 720석 중 96석으로 가장 많고 EU 예산에 대한 재정적 기여도 가장 크다. EU 맏형 격인 독일 경제가 지난해 -0.2%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3년(-0.3%)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했다. 과거 EU 경제 성장을 이끌던 독일이 현재는 더딘 경제 성장의 중심에 서 있다.

독일 경제 둔화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생산 비용 증가, 제조업 경쟁력 약화, 글로벌 수요 감소와 중국과의 경쟁 심화 등의 원인이 독일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치적 요인도 빠지지 않는다. 사회민주당(SPD), 녹색당(GRÜNE), 자유민주당(FDP)의 ‘신호등 연정’(각 당의 색상이 빨강, 노랑, 초록색이어서 지어진 별명)은 에너지, 재정지출, 산업전략 등 주요 정책에서 내부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불확실성을 키웠다. 결국 연정은 내부 분열로 무너졌고, 7개월 앞당겨진 조기 총선이 1주일여 뒤인 23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이번 총선에서 중도우파의 기독민주연합(기민련·CDU)·기독사회연합(기사련·CSU)은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제1당이 될 전망이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이끄는 기민련은 ‘아젠다 2030’을 수립하고 경제성장률 2%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법인세와 소득세를 줄이는 세제 개혁, 원전 재가동, 자동차산업 부흥을 위한 내연차 폐지 철회 내용을 포함했다. 디지털 전환 노력 부족 등으로 산업 혁신 속도가 느리다는 점은 독일 경제의 약점으로 지적돼왔다. 혁신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창업 단계에서 겪는 관료주의를 탈피하고 디지털화 및 인공지능(AI) 기술 응용 촉진,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메르츠 기민련 대표가 중국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독일 기업에 대중국 의존도를 줄일 것을 촉구한 것이나, 재정건전성 유지를 중요시하던 기조에서 탈피해 경기 부양의 걸림돌로 지적받는 ‘부채 브레이크’ 제도를 완화할 가능성을 언급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기민·기사 연합이 제1당이 된다고 해도 정책 이행이 순탄치는 않을 것 같다. 기민·기사 연합의 지지율은 30% 수준으로 의회 과반을 이루기 어려워 연정이 필요한데 이념적 차이가 있는 다른 정당과의 연정 구성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 정당 대부분이 극우 성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과의 연정을 배제하고 있으나 이 당은 지지율이 20%대로 올라서 제2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민·기사 연합은 의회 과반을 이루기 위해 대연정을 구성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이념적 차이를 극복하고 국력을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일의 재정정책과 에너지정책, 이민정책은 EU 회원국의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번 독일 총선의 결과로 EU의 정책 방향이 어떻게 변할지가 중요한 관심사다. 특히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친환경 정책이 후퇴할 가능성, 미국과의 관계와 중국에 대한 ‘디리스킹’(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여 위험을 완화하는 전략) 강화 여부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임태형 KOTRA 브뤼셀무역관장
유럽연합(EU)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국가는 독일이다. 2023년 기준 EU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4%로 프랑스(16%)와 이탈리아(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