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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한국 기업의 리쇼어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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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마켓인사이트부 기자) 전 세계적으로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이 화두입니다. 미·중 무역전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탓입니다. 정치권에서도 리쇼어링이 연일 언급될 정도입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해외에 있는 제조시설을 국내로 리쇼어링하는 기업에 파격적인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죠.

올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제조업의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됐습니다. 각국은 분주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중국 등에서 돌아오거나 제3국으로 이전하는 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나섰습니다. 독일은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을 완화해주기 위해 연구개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법인세율도 인하했고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에 리쇼어링을 외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끕니다. 국내 신용평가사 중 한 곳에서 말이죠.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한국 기업의 리쇼어링에 대해 다각도로 짚어봤습니다.

일단 나이스신용평가는 한국 기업의 생산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중간재 생산의 딜레마를 지적한 겁니다.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크게 두 가지 목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한 원가 절감 목적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광대한 시장과 가까운 곳에 제조 기반을 형성하려는 시장 지향형 목적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1990년대 해외 진출 초기에는 의류, 봉제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원가 절감형이 주를 이뤘습니다. 2000년대 들어 성격이 달라졌죠. 국제 분업구조가 일본(기초소재), 한국(중간재), 중국과 인도 그리고 동남아시아(가공조립), 미국(최종소비)로 재편된 겁니다.

한국은 주로 중국과 인도, 동남아시아 현지에 직접 진출했고요. 한국 기업들이 중간재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기초소재는 부가가치가 높지만 기술장벽 또한 높습니다. 미국, 일본, 독일처럼 오랜 공업의 역사가 있어야만 가능하단 의미입니다. 최종재는 브랜드 파워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격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거든요.

중간재는 기업 간 거래(B2B) 시장입니다. 가격, 품질, 수량, 납기로 경쟁하게 되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신속한 투자 의사 결정과 대규모 자본 투입이 필요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서 중간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중국에 있는 한국 기업의 경우 중국 현지 한국 기업이나 중국 현지 기업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중간재 중심의 시장 지향형 투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리쇼어링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합니다. 국내로 돌아오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거나 심지어 관세나 무역장벽에 의해 시장 접근조차 불가능해질 수 있어서죠.

현재 상황에서 현지 생산 체제를 유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의 완성품 조립 사업이 어려워지면 한국 중간재 생산 기업으로 어려움이 전염될 수밖에 없거든요. 한국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김명수 나이스신용평가 신용평가 총괄 부사장은 "한국 기업의 리쇼어링이 성공하려면 중국의 대미 무역 감소분을 채워줄 수 있는 새로운 가공 조립처가 국제 분업 체계에서 준비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히 미국, 일본, 프랑스처럼 이전 비용 지금이나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비 지급 등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세계적으로 해외에 제조 기반을 둔 국가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한국, 대만 정도입니다. 미국의 경우 20조달러를 넘는 광대한 내수 시장이 있습니다. 수출입 의존도가 8%에 불과하죠. 일본도 5조달러의 경제 규모를 갖췄고, 금융자본이 충분히 축적돼 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이라는 단일 시장을 보유하고 있고요. 일방향적인 구호보다는 다차원적인 고민이 필요한 문제인 듯 합니다. (끝)/kej@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