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국내에 출시된 저당밥솥의 모든 것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김정우 한경비즈니스 기자) 밥솥업계에서 우스갯소리처럼 전해지는 일화가 있다. 한 업체에서 저가형과 고가형 전기밥솥으로 각각 밥을 지은 뒤 어떤 밥이 더 맛있는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응답자들은 저가 제품으로 만든 밥을 더 맛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정확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이 일화처럼 그간 밥솥 시장은 ‘더 뛰어난 밥맛을 제공한다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기술 개발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이를 느끼기 어려웠던 것이 현실이다.

이런 밥솥 시장이 최근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닥터키친·다온글로벌컨텐츠 등 다소 생소한 이름의 업체들이 ‘저당 밥솥’이라는 신가전을 내놓으며 모처럼 업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당 밥솥은 탄수화물에 포함된 성분인 당질을 줄여주는 기능을 갖춘 제품이다. 저당 밥솥의 등장과 함께 오랜 기간 지지부진했던 밥솥 시장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지 주목된다.

그동안 기술 개발 측면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이다 보니 오래전부터 밥솥은 소형 가전 중에서도 유독 성장이 더딘 ‘사실상 정체된’ 시장으로 분류돼 왔다.

시장 규모에서도 나타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밥솥 시장 규모는 약 3000억원 정도였다. 매년 조금씩 불어나며 2014년 5000억원대를 형성했지만 이후 제자리걸음이 이어졌다. 지난해도 여전히 약 5000억원 정도의 규모를 형성했을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을 기술적인 측면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식습관의 서구화와 즉석밥의 등장 그리고 한 번 사면 10년 넘게 사용하게 되는 밥솥이란 제품의 특성 또한 시장의 팽창을 저해하는 요인들로 꼽힌다.

실제로 ‘들이는 노력에 비해 수익이 나지 않는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대기업들 역시 밥솥 생산을 완전히 중단(각각 2004년)한 지 오래다.

정체된 모습은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점유율에서도 나타난다. 공기청정기나 청소기 등 여러 소형 가전제품들은 매년 새로운 경쟁자들이 등장하며 업계 순위가 수시로 변해 왔지만 전기밥솥만큼은 예외였다.

2004년 대기업들이 철수한 이후 밥솥 시장은 쿠쿠와 쿠첸의 양강 형태로 재편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구도가 변하지 않고 있다. 정확한 집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현재 쿠쿠의 점유율은 약 60%, 쿠첸은 30% 정도로 추산된다. 나머지를 위니아딤채·PN풍년·기친아트 등이 차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의 트렌드는 선두 업체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간 쿠쿠와 쿠첸은 제품 디자인과 함께 ‘밥맛’ 향상에 집중하며 시장에서 군림해 왔고 자연히 나머지 업체들도 이런 추세에 맞게 새 제품을 출시하거나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서로 경쟁했다.

이런 밥솥 시장에 새롭게 출사표를 던진 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이전까지 국내에서 구매할 수 없던 ‘저당’이라는 기능을 접목한 제품을 내놓은 것이 특징이다. 탄수화물이 함유하고 있는 당 성분을 줄여 밥을 짓는 기능을 포함한 제품들이다.

국내에서도 당뇨나 비만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 밥과 같은 높은 당질을 함유한 탄수화물 섭취를 꺼리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저당 밥솥은 이런 사실에 착안해 틈새시장을 노린 제품이다.

닥터키친은 지난 6월 저당 기능을 갖춘 ‘빼당빼당 밥솥’을 국내 최초로 출시했고 뒤를 이어 다온글로벌컨텐츠도 같은 달 ‘당쿡 저당질 밥솥’을 선보이며 국내에 저당 밥솥 시대를 열었다.

당 성분을 줄이는 방법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밥을 지을 때 쌀의 탄수화물은 물에 녹는다. 닥터키친에 따르면 빼당빼당 밥솥은 탄수화물이 녹아든 밥물을 배출하고 별도로 마련한 물탱크에서 새 물을 끌어올려 밥을 완성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밥의 탄수화물 함량을 최대 40%까지 낮췄다는 설명이다.

당쿡 저당질 밥솥은 분리형 물통 없이도 당질 분리가 가능한 방식을 적용했다. 밥솥 내부를 내솥과 외솥의 이중 구조로 분리했는데 밥을 끓여 당질이 포함된 물을 완전히 분리하고 내부 증기로 뜸을 들여 밥을 짓는 원리다. 빼당빼당 밥솥과 마찬가지로 약 40%까지 탄수화물을 줄여 밥을 짓는다.

이런 저당 밥솥의 등장을 두고 ‘더욱 뛰어난 밥맛 제공’이라는 다소 미묘할 수 있는 기술 개선에 묶여 있던 밥솥이 마침내 진화에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생소한 제품인데다 국내에 소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성공 여부를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향후 이를 바라보는 전망은 다소 긍정적이다. 이미 저당 밥솥이 한국과 식습관이 비슷한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저당 밥솥은 점차 대중화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만 수만 대가 팔려 나갔다. 매년 일본에서 한 해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상품·서비스 등을 선정하는 매체인 닛케이트렌디는 ‘2018년 상반기 히트 가전 상품’으로 저당 밥솥을 꼽았을 정도다.

국내에 저당 밥솥을 판매 중인 업체들도 제품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판매처를 확장 중이라고 설명했다.

빼당빼당 밥솥은 현재 현대백화점 일부 매장에서도 구매할 수 있고 당쿡 저당질 밥솥도 삼성 디지털 플라자 일부 매장에 입점하며 소비자와의 접점 확대에 성공했다.

향후 판매 증가 여부를 지켜본 뒤 저당 기능을 탑재한 밥솥 제품을 출시하는 기존 업체들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위니아딤채는 당질 성분을 최대 39% 감소시켜 주는 ‘딤채쿡 당질저감 30’을 지난 7월 출시했다. 2015년 업계 2위를 목표로 야심차게 밥솥 시장에 진출했지만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저당 밥솥으로 반등을 노리고 있다.

아직까지 쿠첸이나 쿠쿠는 저당 기능을 탑재한 밥솥 출시 계획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저당 밥솥이 계속 인기를 끌면 이 두 업체 역시 해당 제품을 시장에 선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끝) / enyou@hankyung.com (출처 한경비즈니스 제1245호)

오늘의 신문 - 2024.04.2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