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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에 '참기름 플랜트' 짓는 이 남자…"우리 기름으로 올리브유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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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즈버킷 박정용 대표, 저온압착 전통기름으로 세계시장 노크
동대문에 '참기름 플랜트' 내년 1월 오픈..."해외도 플랜트로 진출"

(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참기름과 들기름은 한식의 필수 재료다. 참기름은 탄생은 기원 전 6000년경 나일강 유역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유독 한국에서 그 꽃을 피웠다. 참기름은 삼국유사, 동의보감에도 등장한다. 들기름은 조선 세종 때 대중화됐다고 알려져 있다.

한 방울 만으로도 음식의 맛을 확 살리는 참기름과 들기름. 우리가 흔히 아는 맛은 사실 전통의 맛이 아니다. 현재 공장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참기름은 ‘고온압착’ 방식이다. 깨를 270도 이상 고온에서 강하게 볶아 기름을 짜면 더 많은 지방이 더 쉽게 빠져나온다. ‘갈색의 고소한 맛’으로 알고 있는 참기름의 맛은 사실 참깨의 탄맛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이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생성된다. 적은 양의 원료로 많은 양의 기름을 짜내려는 방식. 방앗간과 공장에서 만드는 참기름과 들기름은 지금까지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었다.

참기름과 들기름의 제조방식을 완전히 바꿔 세계 시장을 두드리는 ‘기름 장인’이 있다. 쿠엔즈버킷의 박정용 대표(50)다. 백화점 식품 마케터로 일하던 박 대표는 7년간 전통기름을 독학했다. 2012년 회사를 설립하고, 이듬해 서울 역삼동 아파트 단지 안에 59㎡ 규모의 작은 방앗간을 냈다. 여행용 가방에 참깨를 가득 싸들고 독일 덴마크 등 기계회사 10여 군데를 돌기도 했다. 전국의 참깨 생산지를 돌며 연구했고, 농가와 상생하는 계약재배를 시작했다. 그는 “해외를 돌며 올리브유 착유기계에 국산 깨를 적용했는데 번번이 실패였다”며 “6개월에 걸쳐 독일 엔지니어와 직접 기계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원적외선으로 살짝 볶은 참기름·들기름

쿠엔즈버킷은 참기름과 들기름을 140도 이하 저온에서 원적외선으로 볶아 만든다. 볶지 않은 생참기름과 생들기름도 제조한다. 이렇게 짜낸 기름은 제약용 필터로 걸러낸다. 제약용 필터는 링거 수액 등을 거르는데 쓰는 초미세 필터다. 그가 만든 저온압착 참기름과 들기름은 갈색이 아닌 황금빛. 맛과 향도 옅었다. 처음엔 “참기름이 아닌 맛인데, 누가 사먹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알아챘다. 그의 작은 방앗간은 문전성시였다. 멀리 인천에서 노모를 모시고 오는 주부도 있었고, 일본에서 최고급 덴푸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본인 셰프도 찾아왔다. (일본 고급 덴푸라는 참기름에 튀긴다.)

박 대표는 “처음엔 소비자들이 외면할 줄 알았는데 건강에 좋은 기름, 옛날 맛의 참기름과 들기름이라는 소문이 1년 만에 퍼지면서 백화점 등에서 먼저 찾아왔다”고 했다. 가격은 기존 참기름과 들기름의 수 배에 달하지만 갤러리아백화점, 현대백화점 전점, SSG청담점과 도곡점 등 프리미엄 식재료 매장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2013년 직원 3명, 매출 8800만원이었던 이 회사는 현재 약 1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해외서 알아본 전통기름의 가치

해외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품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뉴욕의 미쉐린 스타 셰프 다니엘 바타드가 쿠엔즈버킷의 기름을 사용하며 직접 홈페이지에 소개하기도 했다. 홍콩 시티슈퍼 전점에도 입점했고, 올해 본격적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린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몽로의 박찬일 셰프는 “기존 참기름과 들기름은 향과 맛이 강해 서양요리에 쓰기 어려웠지만, 저온압착 방식의 기름은 어느 식재료와도 거슬리지 않는 맛을 낸다”고 말했다.

저온압착 방식의 참기름과 들기름은 올리브유보다 세계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식약처와의 1년간 성분 분석 결과 벤조피렌은 아예 불검출됐다. 항산화 기능이 있는 오메가3 함유량은 올리브유가 100g당 1.5g인데 비해 들기름은 61g에 달한다. 비타민E는 참기름과 들기름이 올리브유에 비해 3~4배 높다. 또 과다 섭취하면 위험한다고 알려진 비타민K는 올리브유보다 8분의 1 수준으로 적다. 이 때문에 ‘건강에 좋은 기름’으로 알려진 올리브유와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조사기관인 오일앤팻에 따르면 식물성 식용유지 시장은 2015년 200조원에서 2022년 300조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건강을 위해 동물성 유지인 버터 등을 피하고, 식물성 유지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박 대표는 “외국의 수 많은 논문에서는 참기름이 있는 주방은 약방과 같다고 할 정도로 영양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면서 “다만 기존의 제조 방식으로 향과 맛이 강해 셰프들이 잘 쓰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커피와 닮은 기름시장

참깨는 재배하기 어려운 작물 중 하나로 꼽힌다. 날씨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수율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아서다. 일본은 낮은 수익성 때문에 참깨 재배를 포기한 지 오래다. 현재 자급률이 1% 미만이고, 대부분 중국산을 수입한다. 국내는 재배 농가가 한때 줄어들다가 프리미엄 참기름 수요가 늘면서 다시 증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좋은 원재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사업 초기부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과 손 잡았다. 함께 종자협의를 하고 다수의 농가와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참깨 수확량을 높이는 재배기술과 종자를 보급, 농가의 소득이 평균 151% 성장했다. 프리미엄 제품 매출을 하다보니 수매단가도 1㎏당 500~1000원 이상 올랐다. 그는 “참깨나 들깨는 기후와 온도에 매우 예민해 농가와의 소통, 산지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기름과 커피가 비슷하다고 했다. 그는 “참깨와 들깨는 기후와 토양, 종자와 관리방법에 따라서 맛과 향이 완전히 다르다"면서 "커피도 이제 산지를 구분해 다양한 맛과 향을 즐기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방식 참기름과 들기름도 이제 가치소비를 할 때”라고 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식물성 식용유지 시장은 2003년 7400억원에서 2014년 1조6000억원으로 커졌다. 올리브유가 이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지만, 올리브유가 세계화된 건 약 15년 전부터다. 얼마든지 올리브유의 아성을 무너뜨릴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동대문에 짓는 ‘참기름 플랜트’

그는 올해 재미있는 구상을 현실로 옮긴다. 역삼동 작은 방앗간에서 벗어나 동대문에 ‘참기름 플랜트’를 짓고 있다. 2~4층은 참기름 들기름을 짜는 방앗간 역할을 하고, 1층에서는 제품을 판매하고 직접 맛을 볼 수 있는 키친이 마련된다. 내년 1월 문 여는 이 공간은 유명 건축가 문훈 씨가 설계를 맡았다. 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 모른 채 사먹었던 우리의 기름을 도심 속에서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며 “참기름은 시골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짜서 보내주는, 한국인에게는 아주 감성적인 식재료이기 때문에 이를 경험하고 체험하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도심 속에서 한국의 식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색 공간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대문의 참기름 플랜트가 성공하면 세계 주요 도시에 이 플랜트 자체를 수출하겠다는 청사진도 그렸다. 박 대표는 “완제품 수출, 유통 채널 확보 등의 전통적인 해외 진출 방식에서 벗어나 제조과정과 미식 경험 자체를 함께 수출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참기름 플랜트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며 “세계 어느 도심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장소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끝)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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