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근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초대형 테러가 발생한 후 이곳에서도 호텔마다 입구에 철조망과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지만, 윤 관장이 사는 아파트에는 이마저도 없다. 막말로 테러에 무방비로 누출돼 있다. 최근 에디오피아를 방문했던 기자가 “왜 이런 곳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이게 제일 나은 수준”이라고 답했다.
아디스아바바의 외국인 거주촌은 터무니없이 비싸긴 하다. 한달 임대료가 1만 달러에 육박하는 곳도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 위험한 나라에 가족과 함께 나와 있는 공기업 직원에게 일반 거주지역에 살게 하는 건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윤 관장은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거주 비용은 비슷하게 나온다”며 “별 일 없으려니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KOTRA는 점점 오지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아디스아바바 무역관도 2년 전에 생겼다. 우리 기업의 해외 영토 개척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다 보니 프론티어 마켓으로 진출하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처우다. KOTRA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이다. KOTRA 사장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요즘처럼 ‘공기업 방만경영’이 화두가 되는 시점에 차관급이 이끄는 하위 기관이 처우개선용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그러다 보니 오지 무역관장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살 수밖에 없다.
윤 관장만의 얘기가 아니다. 브라질의 치안은 불안하기로 유명하다. 이곳에선 상무, 전무 급인 국내 대기업 지사장, 법인장들도 웬만하면 방탄차는 기본이고 경호차를 별도로 대동하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신호등에만 걸리면 기관총을 들이대고 지갑을 터는 사례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 KOTRA 무역관장의 차는 그냥 일반 차량이다. 역시 예산 문제다.
지금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근무 중인 서강석 관장은 과거 이라크 바그다드 무역관에서 일했다. 그는 기자와 만나 “바그다드에 KOTRA와 주이라크한국대사관이 나란히 있는데, 대사관 공무원은 대사관 옥상에 있는 스나이퍼가 출퇴근길에 경호를 해 주지만 KOTRA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KOTRA 직원은 준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서 관장은 “그때는 좀 서럽더라”고 말했다.
치안문제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온갖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게 오지 KOTRA 관장들의 업무환경이다. 아프리카에서 만난 한 무역관장의 유치원생 자녀는 기자가 아이스크림을 사 주자 “지난 6개월간 한번도 못 먹어봤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정부 산하 기관 임직원으로서 어떤 환경에서도 성심성의껏 일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도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한석우 리비아 트리폴리 무역관장이 피랍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자가 방문했던 험지의 KOTRA 무역관장들, 직원들,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무사하길 빌고, 이번일로 의기소침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