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뒷 얘기

기획재정부 간부들, '닮고 싶지 않은 상사'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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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석 경제부 기자) ‘경제부처 맏형’인 기획재정부에는 다른 부처에 없는, ‘닮고 싶은 상사’ 투표란 게 있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이맘때쯤 과장급 미만 직원들의 투표로 선정되는데요. 기재부 노조는 지난 9일 평직원들이 뽑은 ‘닮고 싶은 상사’ 15명을 선정해 공개했습니다.

투표에는 지난 6~8일 과장급 미만 직원 628명이 참여했고 그 결과 과장 11명, 국장급 이상 4명이 영예를 안았습니다. 전체 과장급 이상 간부 150여명의 10% 선입니다.

그런데 외부엔 비공개로 부쳐지는 또 다른 투표가 있습니다. 바로 ‘닮고 싶지 않은 상사’입니다. 닮고 싶은 상사와 함께 선정되지만 개인의 명예를 감안해 선정 결과는 당사자에게만 통보될 뿐 외부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닮고 싶지 않은 상사로 ‘찍힌’ 간부가 받는 충격과 스트레스는 엄청나다고 합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내로라하는 엘리트 경제 관료로, ‘일이라면 누구 못지 않다’고 자부해왔는데 그런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 때문입니다.

과거 닮고 싶지 않은 상사로 지목된 한 간부는 한동안 부하 직원들과의 만남을 꺼렸다고 합니다. ‘대인 기피증’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늘 부대끼는 후배들 중 누군가는 자신을 닮고 싶지 않은 상사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부하 직원들과 웃으며 얘기를 나누거나 밥 먹을 마음이 싹 사라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한 고위 간부는 닮고 싶지 않은 상사로 꼽힌 뒤 한동안 일하는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무단히 애썼다고 합니다. 말도 최대한 부드럽게 하려고 하고, 직원들 등도 쓰다듬어주고…. 그러다 얼마 안가 ‘이런 식으로는 도무지 업무 성과가 안나더라’며 결국 원래 스타일로 되돌아갔다고 합니다.

상당수 간부들은 직원들의 투표가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합니다. 업무 성과와 상관없이 직원들에게 ‘인간적으로 잘 해주는’ 간부가 아무래도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는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직원들에게 엄한’ 간부는 불리하다는 거죠. 이른바 ‘낙인효과’를 걱정하는 간부도 있습니다.

노조 투표는 직원 1명이 닮고 싶은 상사와 닮고 싶지 않은 상사를 각각 과장급에서 최대 4명, 국장급 이상에서 최대 2명을 적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그렇다 보니 누군가를 적어낼 때 다른 직원들의 평판이 적잖은 영향을 끼칩니다. 한번 부정적 인식이 퍼지면 함께 일한 적도 없는 직원들도 무심코 그 간부를 ‘닮고 싶지 않은 상사’로 적어낸다는 겁니다.

일각에선 ‘닮고 싶지 않은 상사가 사실은 일 잘하는 상사’라는 말도 나옵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강하게 밀어부치다 보니 직원들은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업무 성과는 더 좋은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실제 1급 이상을 지낸 고위 간부 중에는 이런 분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노조는 이 투표가 조직문화 개선에 기여했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좋아하는 상사가 업무 성과도 좋다는 겁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hohoboy@hankyung.com
(주용석 경제부 기자) ‘경제부처 맏형’인 기획재정부에는 다른 부처에 없는, ‘닮고 싶은 상사’ 투표란 게 있습니다. 2004년부터 매년 이맘때쯤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