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의 뉴스레터

이학영
가짜 사과, 진짜 사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상원 법사위원장이었던 시절, 대법관 후보 클래런스 토머스 인사청문회를 주관했습니다. 토머스의 직장동료였던 아니타 힐이 출석해 그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바이든은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인 채택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그녀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이며 모욕했습니다. 이후 28년 동안 사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던 바이든이 2020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짧게 입을 열었습니다. “힐이 겪어야 했던 일에 대해 유감이다.”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취임 후 수십 년 전 캐나다 정부가 성(性)소수자들에게 저지른 억압 행위에 대해 사과했습니다. 그리고는 생존자와 가족들에 대한 재정적 보상과 법률 개정을 약속했고, 실천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임상심리학자인 몰리 하우스 박사는 바이든과 트뤼도를 ‘가짜 사과’와 ‘진짜 사과’를 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습니다.

한국경제신문 5월7일자 A23면 <좋은 사과는 말을 하는 게 아닌 듣는 것> 기사는 두 사람의 사과가 어떻게 다른 지 일러줍니다. “진심 어린 사과는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고 심리적 상처도 치유해주지만, 어설픈 사과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 똑같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더라도 같은 사과가 아니다.” 하우스 박사는 ‘좋은 사과(good apology)’는 “진정한 대화를 시작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타인과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는 성숙한 관계 맺기의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이들 달린 남자와 재혼한 어느 여성의 갈등 해결과정도 그런 사례입니다. 여성은 자기가 그들을 모두 먹여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만성피로에 시달렸습니다.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정말 미안하다” “지켜보는 내 마음도 속상하다”며 몇 차례나 사과했지만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과로와 “미안해”의 상태만 반복되자 남편은 다시 처음부터 ‘좋은 사과’를 하기로 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대신 아내가 힘든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마침내 육아와 생업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하우스 박사는 “좋은 사과는 생채기 난 부분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하고, 관계에서 틀어진 부분을 실질적으로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사과의 4단계 모델’을 개발했습니다. “상대의 이야기를 무조건 경청하며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1단계), 명확하고 진솔한 언어로 후회와 반성을 전달한 뒤(2단계), 잘못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이나 문제 해결을 통해 관계를 바로잡고(3단계), 추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분명한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4단계).”

사과는 ‘타인의 마음에 귀 기울이며 나의 결점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돼야 합니다. 하우스 박사는 “자신의 불완전성을 생산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인생관은 물론 성격까지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사과의 첫걸음은 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질문과 경청’이 돼야 한답니다. “아무리 잘 알고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 관점을 이해하려면 직접 물어보는 게 좋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려면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만큼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논설고문
이학영 드림
이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