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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란 무엇인가…머리띠를 매는 부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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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란 무엇인가…머리띠를 매는 부박함

오늘은 노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얼마 전 민주노총이 내년에 25%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요구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을 주장이었죠. 하지만 23일 기자회견을 한 김명환 민주노총위원장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2017년에는 50%가 넘는 인상률을 요구한 적도 있다.” 그러니 25%라는 숫자에 뭘 그렇게 놀라느냐는 반문이었습니다.

어쩌면 고도로 조직화된 노조의 진면목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초 노동 3권은 사용자에 비해 힘이 약한 근로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민노총이나 대기업·금융사 노조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법적 권리를 발판으로 회사의 생산성을 넘어서거나 사업장내 노사문제를 벗어나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평소에 온순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머리띠만 매면 달라진다는 얘기를 노조 주변에서 자주 듣습니다. 갑자기 용감해질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다수의 보호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일 겁니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대중조직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중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어렵지만, 대체로 생각과 판단, 경제적 능력 등이 사회적 평균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직장내 노조원들은 이 평균치가 더 압축적이겠죠. 동질성이 강하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동질성은 구성원들을 더 강하게 뭉치게 하는 조건일 뿐, 회사 전체 상황이나 사회적 균형을 고려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노조는 결사체일 뿐, 뭔가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습니다. 스스로 기업의 이익을 늘리거나 경제를 성장시킬 힘이 없습니다. 이런 연유로 노조원들은 구태여 회사의 생산성을 올리거나 경제 전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고민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노조의 실체입니다. 비난할 일도 아닙니다. 원래 그런 존재인 것입니다.

몇해 전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노조 집행부가 파업까지 감행하며 어렵게 합의한 임금협상안을 조합원 총회에서 부결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2년 연속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뒤로 약간의 부분 파업과 실랑이 끝에 다시 합의안이 만들어졌고 조합원총회는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결과는 허탈한 것이었습니다. 약간의 상품권을 더 받는 걸로 마무리됐습니다. 한번은 20만원, 이듬해는 30만원이었습니다. 평균 연봉 9000만원이 넘는다는 근로자들의 집단적 선택이 이런 수준이었습니다.

현대차 근로자들의 품성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보면 괜찮은 시민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인이 노조라는 대중조직에 포획되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아주 단순하고 본능에 충실하게 만들어버립니다. 상품권 20만원을 더 받자고 다시 파업을 한 것은 노조라는 대중조직의 잔인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노조는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일을 하거나 다른 구성원들을 너그럽게 대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 개별 노조도 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들은 다수의 힘을 앞세워 이익이 걸린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입니다. 때문에 기업과 사회의 자원 배분을 왜곡시키고 자율과 경쟁이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자주 훼손합니다. 노조 덕분에 모든 근로자들이 혜택을 입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현실에선 힘센 노조의 조합원이 약한 노조의 조합원이나 조직화되지 못한 근로자들에게 돌아가야할 몫을 빼앗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 전문가도 아닌 제가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은 것은 정부가 노조법과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등 이른바 ‘노조3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기 때문입니다. 지난 국회에서 무산된 법안인데도 거대 여당의 힘을 믿고 재추진하는 것입니다. 해고자나 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말이 됩니까. 이렇게 노조의 힘을 키워놓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현대차 노조원 같은 사람들이야 돌아서서 상품권을 셀 수 있겠지만 울타리 밖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들도 머리띠를 매야겠지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백승현 기자가 A1,4면에서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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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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