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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풍경에 빠지고, 인심에 반하고… 추억 쏟아낸 '29초 시네마 천국'

“거긴 너무 멀고 아무것도 없어”라며 돌아선 남자는 “좋은 사람 만나”라고 작별을 고한다. 그런 그에게 ‘바보’라며 “강원도에 왜 아무것도 없냐”고 되묻는 여자의 표정은 진지하다. 곧이어 속사포 랩 같은 설명이 이어진다. 경강선 기차를 타면 두 시간도 안 되고 서울 양양고속도로가 동해고속도로와 연결돼 동해안까지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곳이 강원도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춘천의 남이섬, 강릉의 동해, 정동진 일출, 설악산의 절경, 평창동계올림픽의 감동까지. 작정하고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강원도의 풍경이다.

윤주훈 감독이 ‘강원도 29초영화제’에 출품한 영상 ‘다시, 강원도!’의 내용이다. 이 작품은 19일 강원 춘천시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열린 영화제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받았다.

“올림픽이 끝났다고 강원도가 끝난 것은 아니다”란 여자의 말이 이번 영화제의 주제인 ‘다시, 강원도’의 의미를 제대로 담고 있다. 작품 제목도 주제에서 그대로 따왔다. 여자의 말에 다시 돌아서 두 사람이 포옹하는 장면과 ‘다시, 강원도’라는 로고가 겹쳐진다.

훈훈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듯했던 작품은 마지막 5초간 새로운 여자의 등장이라는 ‘깨알 반전’으로 다시 한번 웃음을 선사한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 장면도 보여주지 않고도 강원도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영상을 제작해냈다. 무엇보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있는 구성, 주제 적합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강원도와 한국경제신문사가 함께 주최한 이번 영화제는 올해로 4회째다. 지난 2월 뜨거웠던 평창동계올림픽은 막을 내렸다. 여름 휴가철이 끝나면서 동해도 한산해졌다. 하지만 그곳에는 추억이 남아 있다. 그곳의 경험과 기억을 잊지 않고 영상으로 간직하기 위한 이번 영화제에 수준 높은 작품이 대거 응모했다.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11일까지 공모 기간 일반부와 청소년부를 합쳐 총 198개 작품이 출품됐다. 바다와 산 등 강원도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부각한 작품이 많았다. 강원도의 특산물과 대표적인 여행지, 동계올림픽과 관련한 작품도 다수였다. 이 가운데 대상을 포함해 일반부 11개 작품, 청소년부 5개 작품 등 총 16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청소년부 대상을 받은 전지현 감독의 ‘이번 정류장은 강원도입니다’도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았다. 작품 속 강원도의 계절은 겨울부터 시작한다. 1월 친구들과 놀러갔던 주문진 해변, 2월 감동을 전한 평창동계올림픽 중계를 거쳐 3월 오빠가 입대한 인제 신병교육대, 8월 가족들과 함께한 대관령 양떼목장 여행까지 휴대폰 속 영상으로 강원도를 추억한다. 계절을 설명하는 내레이션도 하나의 작품이다. 겨울의 강원도는 ‘열정으로 지핀 커다란 모닥불’, 봄의 강원도는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 아름다운 청춘의 시작’, 여름의 강원도는 ‘겨울바람이 아직 남아 부는 자연의 여유로움’으로 표현했다. 겨울 봄 여름, 그리고 다시 온 가을. ‘가을의 강원도는 어떤 이야기일까’라는 질문으로 영상을 마무리한다. 도심의 저녁 피곤한 몸으로 버스에 오르는 학생으로 시작해 ‘이번 정류장은 강원도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흐르는 강원도행 버스라는 마무리도 돋보였다는 평이다.

수려한 영상미로 눈길을 끈 작품도 있다.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은 이선명 감독의 ‘홈(Home)’이다. ‘2018년 나는 다시 강원도로 삶의 터를 옮겼다’는 자막과 함께 펼쳐지는 영상은 강원도의 작은 시골집과 끝없는 해변, 시원한 계곡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은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재미도 있었지만 유년 시절 강원도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추억을 잊을 수 없었다. 논에서 익어가는 벼, 등대와 갈매기의 모습도 ‘자연 그대로, 그대로의 자연이 있는 곳’, 고향 강원도의 모습이다.

이날 시상식에는 정만호 강원도 경제부지사와 정유선 강원도의회 의원(사회문화위원), 박기호 한국경제신문 좋은일터연구소장과 조일훈 편집국 부국장, 수상자와 가족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걸그룹 버스터즈가 축하공연 무대에 올랐다. 일반부 대상 500만원, 청소년부 대상 200만원 등 수상자들은 총 2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