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29초 영화

무르익은 금빛 열정과 희망…"나는 오늘도 평창을 꿈꾼다"

미끄럼틀 꼭대기에 한 꼬마가 앉아 있다. 긴장해서인지 표정이 아이답지 않게 진지하다. 고글을 쓰고 출발 준비를 마친 아이는 호루라기가 울리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한다. 바람을 가르는 효과음과 함께 몸을 활처럼 뻗어 점프하는 순간, 동네 놀이터는 눈이 휘날리는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장으로 변한다. 관중석에서는 환호 소리가 쏟아진다. 아이는 자신의 경기가 만족스럽다는 듯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어느새 화면은 TV 속 한 장면으로 변하고 방 안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비춘다. 잠들기 전 갖고 놀던 크레파스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상징인 ‘ㅍ*’ 모양으로 놓여 있다. 그때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오늘도 평창을 꿈꿉니다.”

30일 강원 춘천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3회 강원도 29초영화제 시상식에서 일반부 대상을 차지한 최성규 감독의 ‘Dream’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단지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꿈과 희망이 이뤄지는 순간으로 표현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디어는 물론 재치있는 구성과 연출력도 돋보였다.

강원도와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당신이 평창입니다’와 ‘겨울, 강원도 이야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기대를 담은 작품부터 강원도에서의 추억을 담은 작품까지 총 266편이 출품됐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우수작 16편에 총상금 2000만원이 주어졌다.

송석두 강원도 행정부지사는 “29초 영화제 출품작들이 강원도의 멋과 매력을 세계인에게 알리게 될 것”이라며 “짧은 영상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소년부 대상은 함형진 감독의 ‘우리 모두가 평창입니다’가 차지했다. 늦은 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있다. 그때 손님이 마시던 음료 병뚜껑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아르바이트생의 눈빛은 반짝이고, 빗자루에는 전기가 통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편의점은 아이스하키 경기장으로 변하고, 빗자루로 병뚜껑을 요리조리 끌고 간 아르바이트생은 쓰레받기로 ‘골인’에 성공한다. “골!” 해설자들의 흥분한 목소리와 함께 아르바이트생은 어느새 금메달을 목에 건 영웅이 돼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꿈이 있다면 누구나 금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일반부 최우수상은 구성희 감독의 ‘It’s your home, it’s your PyeongChang’에 돌아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한 주부가 외국인 선수 및 관광객을 위한 홈스테이를 준비하는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손님을 맞이하기 전 정성스레 청소하고, 음식을 만든 뒤 더듬더듬 영어공부를 하는 모습에서 아주머니의 설레는 마음이 묻어난다. ‘띵동.’ 실내화를 신고 뛰어나간 아주머니가 손님을 맞으며 구수한 말투로 이렇게 외친다. “어서오세요, Welcome!” 세계적인 축제를 일상의 설렘으로 연결한 점과 한 편의 따뜻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청소년부 최우수상은 임민서 송도훈 강병하 감독의 “당신에게 평창은 무엇인가요?”가 받았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광판에 나오는 올림픽 경기 장면을 무심하게 지나친다. 장면이 바뀌고, 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선수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누군가에겐 그저 지나가는 행사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4년 노력의 결실이 이뤄지는 순간이자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라는 점을 담백하게 보여준다.

일반부 우수상은 손현록 감독의 ‘진정한 국가대표’와 이상헌 박규태 감독의 ‘겨울, 강원도’가 각각 차지했다. 청소부 아주머니는 컬링 선수로, 지각을 면하기 위해 뛰는 직장인은 스키 점프 선수로, 버스에서까지 공부하며 모의고사를 준비하는 여고생은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표현했다. 고된 일상에 지치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당신이 진정한 국가대표 선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겨울, 강원도’는 젊음에 무뎌졌다고 느낀 어느 겨울 무작정 찾아간 강원도의 풍광을 그림처럼 담아낸 작품이다. ‘그리움이 내려앉을 때면 나무를 지나온 햇빛으로 시린 콧등을 위로합니다’라는 구절 등 한 편의 시(詩) 같은 내레이션이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긴다.

수상작과 출품작은 강원도, 평창동계올림픽 홍보 영상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예정이다. 장선영 한국경제TV 아나운서의 사회로 열린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가족 등 6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추첨을 통해 드론, 액션캠, 영화관람권 등 푸짐한 경품도 받았다. 아이돌그룹 ‘드림캐쳐’가 축하공연으로 열기를 더했다.

춘천=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