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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법무부 29초 영화제에 날아든 '7번방의 편지'

“법은 저에게 ‘그림자’입니다. 늘 제 뒤를 따라다니며 옭아매는 것 같아 어두운 곳만 찾아다녔습니다. 어두우면 그림자가 따라오지 못할 테니까요. 그런데 여기 와서 선생님의 손을 잡고 빛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림자는 나를 지켜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그림자는 결국 ‘나’였습니다.”

지난달 21일 경기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바리스타 교육 현장에서 각자에게 ‘법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한 학생(원생)이 이렇게 답했다. 법은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라고 생각했는데 보호소에 와보니 자신을 지켜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법무부와 한국경제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법무부 29초영화제’ 사무국에 전국의 보호소와 교정시설 42곳에서 보내온 편지 1400여통이 쏟아졌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법은 나에게 OOO다’. 수감자들은 빈 칸에 ‘헐거운 운동화 끈’ ‘동아줄’ ‘밥’ 등 다양한 생각을 채워서 보내왔다. 꾹꾹 눌러 쓴 원고에는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 재기의 꿈이 담겨 있다.

전문적인 광고 스토리보드의 형식을 갖춘 출품작도 눈에 띄었다. 시나리오를 10개나 출품한 참가자, 외국인 수감자의 작품도 있었다. 경북 청송 지역 교도소에서 135개, 서울남부교도소·구치소에서 125개의 시나리오를 제출해 기관별 순위에서 1, 2위를 차지했다. 청주여자교도소에서도 31개의 작품을 출품했다.

인천구치소의 A씨는 법은 ‘인생 사용 설명서’라고 풀었다. 시나리오 속 주인공은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자신의 손을 보며 ‘고장 난 불량품’이라고 느낀다. 수감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주인공은 영정 사진을 보며 깨닫는다.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고 가족을 다독이는 이 손이 불량품일 리 없다.’ 교정시설에서 용접을 배우고 재활에 힘쓴 주인공의 손은 원숙함으로 가득 찬다. 법은 주인공에게 자신의 손을 쓸모 있게 만들어준 ‘인생 사용 설명서’였다.

서울남부구치소에서 시나리오를 보낸 B씨에게 법은 ‘아버지의 회초리’다.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잘못된 길을 걷게 했다며 자책한다. 아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았던 것처럼 교정시설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뉘우쳤다며 아버지를 위로한다.

서울소년원, 안양소년원, 광주소년원 등에서는 같은 방을 쓰는 원생끼리 팀을 이뤄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전국 10대 소년보호기관에서 기관별 심사를 거쳐 채택된 작품 58건을 출품했다. ‘1그램의 용기’ ‘수학보다 쉽다’ 등 딱딱하게 생각했던 법에 새로운 의미를 담은 작품이 많았다. “학창 시절 나에게 가장 쓸모없는 과목은 수학이었다. 공식이 하나라도 틀리면 올바른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 법도 그랬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법은 마음만 먹으면 수학보다 풀기가(지키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리스타, 마술, 제과제빵 교육 등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다지며 ‘새 출발’ ‘기회’ 등의 의미를 담은 참가작도 있었다.

29초영화제 사무국은 수감자들의 시나리오 중 우수작을 선정해 영상 촬영과 편집을 지원한다. 촬영을 위해 기성 감독, 영상 관련 기업 관계자 및 동아리 학생들의 재능기부도 받는다. 재능기부에 참여하는 감독들은 교정시설을 방문해 시나리오를 쓴 출품자와 함께 기획, 촬영하게 된다.

이번 영화제는 오는 7일까지 출품작을 받고, 17일 서울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우수작을 시상한다. 총상금은 2000만원. 출품 및 재능기부 희망자는 29초영화제 사무국 홈페이지(www.29sfilm.com)에서 신청하면 된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