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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입시전쟁·학교폭력…'29초 시네마' 하루 100여편 쏟아진다

“레디~큐!” “NG, 다시하자.” 선린인터넷고에서는 요즘 영화를 촬영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멀티미디어과 학생들이 29초 영화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상희·전성하 학생은 한팀을 이뤄 ‘피라냐’란 작품을 완성했다. 무대는 교실. 칠판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었다. 왕따의 문제점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다. 이현진 군은 ‘사랑의 안경’, 이현우 군은 ‘골목길’을 만들어 29초영화제 홈페이지 (www.29sfilm.com)에 올렸다. 박서영 양(‘예기치 못한 사랑’)을 비롯한 다른 학생들도 마무리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강원애니고에서도 영화 제작 붐이 일고 있다. 모두 15명이 17편의 작품을 29초 영화제에 출품했다. 강원애니고는 문화콘텐츠 분야를 교육하는 특성화 자율운영 학교다. 방학 때마다 영상 관련 기술캠프를 열어서 1학년 2학기가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3~5분 분량의 영상 제작 능력을 갖추게 된다. 29초 영화제는 이들에게 최고의 활동 무대다. 이 학교 송복심 교사는 “학생들이 배운 실력을 발휘하기에 29초 영화제만한 게 없다”며 “어느 공모전보다 많은 학생들이 29초 영화제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2회 29초 영화제 예선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영상 관련 학과 학생들과 동아리 멤버들의 출품작이 몰려들면서 열기를 더하고 있다. 이번 대회는 지난 대회에 비해 예선전 일정이 반으로 줄었지만 제출된 작품 수는 800여편이 넘는다. 이 중 심의를 통해 공개하기 부적합한 작품은 모두 걸러내고 25일 현재 500여 작품이 온라인 심사를 통해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 28일 마감을 앞두고 매일 100여편의 작품이 업로드되고 있다.

◆작품 수준 업그레이드

작품 수준은 지난 대회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이다. 소재익 감독의 ‘명당’처럼 29초를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아 예선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올해부터 일반부와 청소년부를 나눠 시상하면서 청소년들의 참여가 급증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예선 출품작 중 40% 정도가 청소년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강원애니고, 선린인터넷고처럼 영상 관련 특성화고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영상을 전공하지 않지만 미래의 스필버그를 꿈꾸는 학생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예선전 참가자들 중에는 이미 본선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본선 주제는 ‘스마트기기’ ‘카드’ ‘여행’ ‘경쟁’ ‘이(2·e·two 등 동음이의어 표현 가능)’로 정해 미리 발표했다. 작품 구상 시간을 충분히 주기 위해서다.

◆청소년 고민 다룬 작품 많아

청소년 감독들이 만든 작품에는 이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작품만 봐도 청소년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 들여다볼 수 있다.

김현주 감독(강원애니고)은 ‘일상’이란 작품으로 고3의 고단한 하루를 표현했다. “매일 기계같이 일어나서 등교 준비를 하고 공부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연수 감독(목동고)은 ‘입시전쟁’이란 작품에서 모의고사를 풀다가 절망에 빠지는 학생의 모습을 통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입시전쟁을 묘사했다. 윤지혜 감독(서울산업정보학교)은 최근 청소년 흡연율이 급증하는 점을 감안, ‘부전자전’이란 작품을 통해 흡연 문제를 다뤘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을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도 있다. 백현지 감독(강원애니고)은 ‘거짓말’이란 작품에서 두 부녀의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통해 짠한 여운을 자아냈다. 딸은 부담스런 등록금 때문에 합격 사실을 숨기고, 아버지는 딸이 걱정할 것을 염려해 명예퇴직을 숨긴 채 일자리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다.

◆제작 스토리도 제 각각

‘골목길’을 제출한 이현우 감독(선린인터넷고)은 “동생이 겪은 실화를 그대로 영상에 담았다”며 “청소년들이 주로 PC방과 노래방, 당구장에서 논다면 나는 영화판이 놀이마당”이라며 미소지었다.

‘피라냐’를 제작한 유상희·전성하 팀은 “학교 폭력이란 심각한 주제를 다루면서 어떻게 하면 폭력을 보여주지 않고 그 문제점을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사랑의 안경’을 만든 이현진 감독은 “고3이라서 공부도 해야 하고, 영상도 찍고 싶을 때 최고의 해답은 29초 영화인 것 같다”며 “아이디어만 좋으면 촬영 부담 없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엄지 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