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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가슴시린 '29초의 진실'…가족애·청년실업 등 우리시대 자화상

꿈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한 취업준비생 대산은 회의감에 시달린다. 우연히 횟집 수조에 갇혀 있는 물고기들을 보고 분노와 슬픔을 느낀 그는 급기야 물고기를 훔쳐 달아나 넓은 바다에 풀어준다. 그는 자신에게 점차 스며드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한다. “그냥 지나치다간 잃는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쉽게 굳어버리겠지.”(정성훈 감독의 ‘어려운 답’)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 실업은 ‘제1회 29초 영화제’의 주요 테마였다. 많은 출품작들이 고단하게 살아가는 청년 문제를 다뤘다. 한아름 감독(21)의 ‘twenty summer’는 취업률이 낮은 요즘, 많은 취직준비생들이 스트레스로 인해 또 다른 자신의 인격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그렸다.

“요즘 뭐하고 살아?” “숨쉰다.” 짧은 대화로 시작하는 남형욱 감독(25)의 ‘숨’도 스펙, 취업, 경쟁의 압박 속에 살고 있는 20대의 현실을 표현했다.

29초 영화제에 비친 2011년 세상은 다소 우울하게 다가왔다. 주된 테마는 청년실업, 등록금, 자살, 고등학생 스트레스, 악성댓글, 가족애 ,실험정신 등이었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 오늘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참가자들은 우리 사회의 단면과 청춘의 고민을 예리하게 포착해 짧은 영상으로 표현해냈다.

대학 등록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양조아 감독(29)의 ‘소녀, 라이터를 켜다’. 소녀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떨어졌다고 거짓말한다. 병석에 있는 아버지와 5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 사이에서 고민하던 소녀는 납부기간을 넘기고 결국 등록금 용지를 태워버리고 만다. 김은영 감독(22)의 ‘구리다’는 최저임금인 시급 4350원으로는 등록금을 마련하기에 턱없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열흘에 70만원을 받는 용역깡패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남자의 모습을 그렸다.

고등학생의 스트레스를 다룬 작품도 여럿 출품됐다. 김동하 감독(20)의 ‘19.NINETEEN’은 숨막힐 듯 계속되는 학교생활에 쓰러져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 수험생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이야기한다.

안재현 감독(18)은 ‘희망 우주선’에서 학생들이 학교에 바라는 희망을 우주선을 통해 표현했다. 강제 야간자율학습, 0교시 수업과 약한 친구를 때리는 폭력서클이 난무하는 학교에 우주선이 나타나 모든 것을 태워버리지만 현실에 그런 우주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준열 감독의 ‘殺人指(살인지·사람을 죽이는 손가락)’, 한인식 감독(24)의 ‘대화가 즐겁다’, 정승연 감독(19)의 ‘단절’ 등은 악성 댓글과 스마트폰 등장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 등 기술 발전의 이면에 나타난 인간성 상실을 비판했다. 이상노 감독의 ‘명당’, 이승민 감독의 ‘Rest is silence’,우미래 감독의 ‘Holding Me’ 등은 늘어나는 자살 문제를 다뤘다.

가족의 중요성과 가족애를 부각시킨 작품도 주목받았다. 강동헌 감독(36)의 ‘아침’은 정성스레 차린 아침을 아무도 먹지 않고 나가 서운한 엄마, 잠시 후 딸의 문자 메시지를 보고 웃는 엄마의 모습을 통해 가족애를 일깨운다.

박준영 감독(26)의 ‘밥상’은 김과 김치뿐인 어머니의 초라한 밥상과 자식들을 위해 거나하게 차린 밥상을 보여주며 자식들이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의 심정을 표현했다. 유미진 감독(24)의 ‘빈자리’는 아버지가 떠난 빈자리를 통해 애틋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작품도 많았다. 김영실 감독의 ‘Breath’는 물이 가득 든 드럼통에 돼지 머리를 끓이는 충격적인 영상을 담고 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당한 돼지들의 모습에서 비쳐진 잔인한 학살의 이미지가 작품으로 이어졌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