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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영화

29초 영상미학 벌써 1000편 넘어…'스마트 시네마' 천국

29초영화제 예선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지 3주째.세계 최초의 디지털 컨버전스 영화제를 표방한 젊은 영화제답게 속도면에서 여러 가지 기록을 깨고 있다. 출품작이 400편에 육박하고 있고 참가 대기 회원 수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합해 1만명을 훌쩍 넘었다. 심사 중인 작품을 합하면 출품작은 이미 1000편을 넘어섰다. 영화 전공자들만의 잔치로 여겨져 1년에 많아야 200여개 출품에 그치는 국내 단편영화제에 비해 출발부터 스케일이 다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당초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수준에 그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질적인 면에서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 디지털 원주민)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영상문법 자체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평이다.

◆수평적 네트워크 문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제작 방식의 변화다. 29초영화제 참가자들은 감독으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고독한 영화 작업을 수행하면서도 수평적 네트워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배경음악(BGM) 기부다. 각종 첨단기기에 힘입어 영상을 찍는 데는 문제가 없으나 배경음악으로 쓸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난제를 극복한 것이 바로 음악기부다. 영화음악 작곡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상황별로 쓸 수 있는 음악 소품들을 29초영화제 사이트에 공개하고 작곡가 이름을 자막에 공개하는 조건으로 누구나 쓸 수 있게 했다. 이미 13편의 음악이 공개됐고 인기곡은 50회 이상 출품작에 사용됐다.

연기재능을 기부하겠다는 자원자도 나타나고 있다. 한림예술고등학교 재학생 2명은 배우가 없어 완성도를 높이지 못하는 감독들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결해 달라며 연락처를 남겼다. 아예 제작품앗이를 표방하며 재능기부자들을 모집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예선 초기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치호 감독(31 · Mr.Pictures 대표)의 경우 어린아이가 자연 속을 뛰노는 'Back to Nature'를 찍기 위해 29초영화제 커뮤니티를 통해 연결된 현악3중주단과 함께 작업했다.

친구들끼리가 아니라 잠재적 경쟁자 그룹 속에서 서로 필요한 것을 나눠주며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평적 네트워크 문화가 29초영화제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

29초영화제를 대하는 사람들이 처음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29초는 너무 짧지 않나요? 그 시간에 뭘 표현하겠어요?" 하지만 이런 의문은 출품작을 보는 순간 금방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직시하고 제대로 꼬집고 있는 영상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출품작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자살 문제다. 세상과 작별하려고 옥상에 혼자 올라가는 장면을 담은 작품들이 10여편.풀어가는 방식도 유쾌하다. 이동한 감독(29 · 천안 영상미디어센터 비채커뮤니티 멤버)은 '작은 관심'에서 아래로 뛰어내리기 직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덕분에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는 상황을 설정했다.

온라인 악성 댓글에 대한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준열 감독(23 · 한양대 중국학과)은 '살인지:사람을 죽이는 손가락'을 통해 컴퓨터로 사람을 내리쳐 죽이는 직설적인 방법으로 칼보다 무서운 악성 댓글의 폭력성을 경고했다.

한 참가자는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는 29초 영화가 기존 영화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들만의 잔치는 끝났다!

대부분의 영화제 혹은 공모 방식을 취하는 공모전은 출품자 입장에서는 어떤 심사 방식을 통해 수상작이 선정되는지,출품작 수는 어느 정도 되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 29초영화제는 이에 비해 '우리들의 놀이터'라는 확실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 출품작이 올라오는 즉시 웹(Web)과 앱(APP)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수상작 결정과 시상까지 전 과정에서 참여 공유 개방의 '위키 정신'을 잘 실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작품을 스스로 마케팅하는 활동도 자연히 이뤄지고 있다. 출품작을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참가자들이 늘고 있다. 자기 작품을 중심으로 세상과 연결하는 디지털 시대의 문법이 29초영화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