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미국 정부는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직접 개입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했다.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43년간 유지한 정책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이 ‘전략적 모호성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팡위첸 대만 쑤저우대 정치학과 교수는 독일 매체에 “전략적 모호성에서 전략적 명확성으로 조정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이와 유사한 발언을 세 차례 했다”며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한 반발로 중국이 대만 상공에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단순히 실언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여기는 ‘하나의 중국’ 정책이 폐기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오래전에 약속한 내용(하나의 중국)에 동의한다”며 “우리는 대만의 독립을 장려하지 않으며 이는 대만이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백악관도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19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 측에 엄중 항의했다”며 “중국은 국가를 분열시키는 활동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계에는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하며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며 미국을 향해 “대만 독립 분리주의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필립 데이비드슨 전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은 지난해 중국의 6년 내 대만 침공 가능성을 경고하며 전략적 모호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전략적 명확성으로 가는 것엔 커다란 단점이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중국이 러시아를 물밑 지원할 경우 투자가 끊길 것이라고 바이든 대통령이 경고한 사실도 공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만약 러시아에 부과된 제재를 위반해도 미국과 다른 국가들이 중국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시점을 명시하진 않았지만 3월 이뤄진 시 주석과의 통화 내용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