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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절박한데 사지로 내몰 때냐"…규제法 폭주에 성난 경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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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체들 공동대응 나서

경제계가 들끓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기업을 옥죄는 법안을 잇따라 내놓고선 이를 연내 통과시키겠다고 나서면서다. 기업 목소리를 이렇게까지 무시한 정부와 여당은 여태껏 없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중견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여권은 기업 목소리에 완전히 귀를 닫아버렸다”며 “사상 최악의 입법독재”라고 지적했다.

울분 쏟아낸 기업인들
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단 회의에서는 정부·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법 개정안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한 참석자는 “최근 기업에 힘을 실어주는 정책은 없고, 부담을 주는 안만 쏟아지고 있어 경영하기 너무 힘들다”며 “이렇게까지 반기업정서가 강했던 적은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참석자는 “여권이 자신들의 법안이 기업에 얼마나 많은 부담을 주는지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특히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이 더 큰 타격을 입을 텐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감사위원분리선출 및 다중대표소송제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규제를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집단소송법 제정안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한 노조법 개정안 등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손 회장은 지난해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자신들이 추천한 인물을 현대차 이사회에 투입하려다 실패한 사례를 거론하면서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3%룰이 도입되면 이런 헤지펀드의 공격을 기업들이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기업들이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고용 유지에 진력해야 하는 시기”라며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 논의를 보류하거나 위기 속 경영계 입장을 우선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오히려 법인세 및 상속세 인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개혁 등 기업 경영에 도움을 주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전제로 한 기업인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칠었다. 한 10대 그룹 계열사 CEO는 “경제계가 안 된다고 호소한 법안만 골라서 통과시키겠다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정부와 여당은 기업들의 생존과 성장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대기업 임원은 “여권은 경제단체와 기업들의 하소연을 ‘엄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경제계 의견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검토한 적이 있는지 의문스럽다”고 꼬집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정부와 여당이 의견 수렴을 하고는 있지만원래 하려던 대로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의견을 들어줬으니 문제없다는 분위기다 보니 경제단체들이 무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단체 공동대응 움직임
정부와 여당이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법안 처리를 밀어붙이겠다고 나서자 경제계에서는 주요 경제단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총 회장단 회의에서도 여러 참석자가 “함께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각자 행동을 하다 보니 정부와 여당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경총을 비롯한 단체가 공동대응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경총과 전경련,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에 개별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최근 경제단체들이 정부와 여당의 폭주에 한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처럼 개별적으로 대응했다가는 정부와 여당의 ‘입법독재’를 막을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제단체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내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오후 열린 경제단체 긴급회의에서도 단체 간 공동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의 부회장들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6개 법안과 관련해 입법부를 대상으로 한목소리를 내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용근 경총 부회장은 “기업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법안들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첫 모임이었다”며 “오늘 회의에 참석한 단체 이외에 전경련과 대한상의 등도 합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김일규/이수빈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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