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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 도입…반기업 캠페인을 제도화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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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 도입…반기업 캠페인을 제도화하는 나라

정부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기업규제 3법’ 만으로도 어쩔줄 몰라하던 기업들은 패닉에 빠졌습니다. 특히 법 시행 전 발생한 사건에도 소급 적용한다는 내용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에도 짙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한국은 기업에 대한 처벌이 강한 나라입니다. 여기에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세하면 누구도 마음 놓고 기업을 운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법 규모를 갖춘 자영업자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잘못에 비해 너무 큰 벌을 내리는 것에 대해 ‘과잉금지’의 원칙은 따져봐야 합니다. 기업들의 생산-유통과정에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시설을 자동화하고 고도화하더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실수가 나오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거나 피해보상을 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정법상 ‘비례의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송을 당하는 경우도 늘어날 겁니다. 예를 들어 스타벅스의 경우 지난 2016년 아이스커피의 얼음 양이 너무 많다(커피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약 50억원짜리 집단소송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원고들은 스타벅스의 의도적인 소비자 기만과 부당 이득 등을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결은 당연히 상식에 부합하게 나왔습니다. “얼음을 빼달라고 할 것이지, 이런 문제를 법원에까지 끌고 오느냐”며 간단히 소송을 기각했습니다.

기업규제 3법과 집단소송법은 일부 시민사회의 고질적인 반기업 활동을 법과 제도로 공식화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겐 ‘큰 승리’로 기록될 겁니다. 하지만 기업활동에는 조종이 울리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사고나 실수로 회사가 통째로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무엇을 제대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한국 기업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 기업들을 포위하고 있는 온갖 규제의 실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면 기업가들은 경영행위 전반을 뒤져 불법행위에 해당할 위험성이 있는 것들을 샅샅이 골라냅니다. 그리고 그 위험을 제거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때까지 많은 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골치 아프면 사업을 접어버릴 겁니다. 여기에 민법이 규율하는 손해배상에 ‘징벌적’이라는 형법 규율까지 적용함으로써 기업인들은 언제든지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는 공포에 시달리게 됩니다. 소비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면 될 일을, 국가가 나서 직접 벌을 주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21세기초 식민국가에서 독립한 나라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본주의를 성공시킨 우리나라에서 왜 이런 일들이 생기고 있는 것일까요.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계속 오르는 중에도 왜 교육과 노동현장에서 끊임없이 반기업 정서를 조장하고 비뚤어진 기업관을 주입시킨 것일까요. 한국의 반기업 세력들은 교묘한 상징 조작을 통해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유지하는데 성공했고, 이제 대단원의 이정표를 찍을 찰나입니다.

어떤 상징조작이 있었던 것일까요. 기업을 권력적 잣대로 재단한 것입니다. 대중들이 정치 권력과 기업 경영권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도록, 두 개의 권력이 동일한 것으로 느끼도록 한 것입니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용어가 대표적인 상징 조작입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삼성이 힘이 있습니까. 이재용 부회장이 기업 밖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까.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기업은 결코 권력이 될 수 없고, 오로지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생사가 결정될 뿐입니다.

지금처럼 반기업정서를 활용해 시민운동을 벌인 사람들이 큰 승리를 거두면 우리 기업활동은 극도로 위축될 수 밖에 없고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미 배임 횡령 과징금 등 기업과 기업인을 벌주는 제도는 차고도 넘칩니다. 직장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대표이사를 형사 처벌하겠다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잘못한 것이 많은 만큼 인과응보로 받아들야야 한다”는 김종인 씨의 생각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기업들 벌 주느라 나라가 망할 판입니다. A1,3,4면에 이인혁 이선아 좌동욱 기자 등이 보도합니다.

p.s.)24일자 신문에 법무부의 집단소송제 입법예고 내용을 자세하게 짚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예정된 수순을 밟는 것이라고 여겨 안이하게 대처했습니다.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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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오늘의 신문 - 2024.04.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