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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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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 고려사이버대 총장 president5@cuk.edu >

무더운 여름날 미리 연락하지 않고 부모님 댁에 방문했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주무시는데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계실 만한 곳을 모두 가봤지만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그렇다고 곤히 잠든 어머니를 깨우기도 어려워 한참의 고민 끝에 발걸음을 거실로 옮겼다. 거실 탁자 위에 놓인 조그만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물탱크실에 있으니 보고 싶으면 전화해요’라는 글과 함께 휴대폰 번호가 선명했다. 비가 온 뒤라 물탱크에 찬 물을 빼낼 요량으로 지하실에 내려간 것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번호 저장할 휴대폰도 없으니 부득이 메모를 남겨야 했다. 불편한 데도 많으니 깨어나 찾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어쩌나 걱정됐던 모양이다. 순간 안도감과 함께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이, 구십이 다 된 노인네가 보고 싶긴?’

아주 오래전 TV 방송에 출연한 노부부의 낱말 맞히기 게임 장면이 기억난다. 그날 주어진 문제는 설명하기 만만치 않은 ‘천생연분’이었다. 할아버지가 애써 설명해도 할머니가 머뭇거리자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같은 사이를 뭐라 하지?” 미소와 함께 나온 답은 “웬수”. 사회자도 방청객도 웃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정답이 아니니 할아버지의 고달픈 여정은 계속됐다. “그것 말고, 네 글자로?” 자신감 넘친 마지막 답변이 “응, 평생 웬수”. 할아버지 심정은 엉뚱한 답을 해대는 할머니가 정말 원수 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장면은 오랫동안 전 국토를 웃음으로 채우기에 충분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만난 지 100일, 200일 등을 기념하며 서로의 애정을 다진다. 자식들이 변변치 못해 부모님의 은혼식은 챙길 여지가 없었다. 금혼식 때는 작은 모임이라도 갖자는데 손사래로 대신했다. 결국 해로한 부모를 위해 자손들이 베푼다는 회혼례마저 무심히 지나치는 불효자가 됐다. 옛날에는 부부가 동네 마실 길을 나서도 짐짓 모른 체 멀찌감치 떨어져 다녔으니 그런 일이 특별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도대체 무슨 즐거움과 좋은 기억들이 숨겨져 있기에 그 긴 세월을 함께 살아낸 것일까? 그 세대 어르신들의 인생살이는 말 그대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제 치하의 설움을 겪고, 6·25전쟁을 거치며 피눈물 나는 피란생활도 이겨내야 했다. 온갖 풍파를 헤치느라 생존본능이 더 단단해지고 마음에 품는 생각들도 비슷해진 것은 아닐까? 말로는 원수라 했지만 그 크기와 넓이와 깊이가 서로 다를 뿐 배려와 인내와 존중이 그 안에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오래 묵어 좋은 것들이 있다. 골동품이 그렇고, 친구가 그렇다. 젓갈을 담가 오랫동안 삭히면 색이 점점 검게 변해간다. 겉모습은 볼품없어져도 잘 간수해 부패하지 않으면 깊은 맛이 더해진다. 잘 삭힌 젓갈처럼 속 깊은 애정으로 살아가신 어르신들이 언젠가 우리 조상이 되겠지. 그때 우리는 어떤 어른의 맛을 내고 있을까?

오늘의 신문 - 2024.03.2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