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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삶'과 '성공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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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 고려사이버대 총장 president5@cuk.edu >

작은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니 벌써 꽤 오래전 일이다. 학교에서 이따금 유명 인사나 학부모를 초청해 특강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 성공한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학생들이 배우게 하고, 도전정신을 북돋워 주려는 게 목적이었을 것 같다.

누군가 ‘당신은 성공한 사람이냐’고 물어오면 답변하기도 멋쩍을 내가 느닷없이 이 프로그램에 초청됐다. 강의 내용도 내 전공과 너무나 거리가 먼 ‘성공 이야기’를 하란다.

성공의 사전적 의미는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다. 부족했지만 교수가 되고 싶어 안달하다가 그 직함을 갖게 됐으니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성공을 주제로 강의할 엄두는 좀처럼 나지 않아 머리가 복잡했다. 내 전공분야가 아니니 당연하다고 위안하며 성공에 관련된 책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생각한 것보다 제법 많은 관련 서적이 있어 좀 안도가 됐다. ‘까짓것 몇 권의 책 잘 정리해서 하면 되지 않겠어?’ 하는 시건방진 생각까지 들었다.

며칠 동안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 공통분모와 같은 공식이 있음을 발견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었다. 가짜 갈비 만들듯 그 공식에 여기저기서 떼 온 살들을 살살 붙여 정말 특별하지 않은 ‘특강’을 했다. 나도 지키지 못한 것들을 습관화하라고 했으니 무슨 감흥이 있었겠나? 그래도 최소한 다른 것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말을 던졌다. ‘성공한 삶은 없고, 단지 성공하는 삶이 있을 뿐이다.’ 지금 생각해도 천만다행인 마무리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목표를 품고 살아간다. 아마도 그 모든 목표를 다 이루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종종 실패한 것이 더 이로운 경험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결국 성공과 실패가 뒤엉킨 삶을 살겠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매일이 성공의 과정이고, 그 과정이 올바라야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에.

시간이 흘러 조금 더 철이 나서야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음을 깨달았다. 뜻을 이뤄 성공하는 것보다 그 흔적들을 잘 지켜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요즘 큰 성공을 이뤄 부러움과 칭송을 받던 사람들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존경받던 인물이 역사적 평가를 달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애당초 결과 중심의 ‘성공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졸면서 나의 특강을 들었을 아이들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야 뜻을 세운다는 서른 살 ‘입지(立志)’의 나이일 테니 성공했는지를 따져보기는 좀 그렇겠다. 그래도 다시 만난다면 ‘성취한 값진 흔적들을 끝까지 잘 지켜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쭐대거나 까불대지 않고도 스스로 행복해야 ‘성공하는’ 사람일 것이라는 말과 함께.

오늘의 신문 - 2024.04.2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