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지면기사

'15년 동결' 의대 정원, 코로나에 빗장 푼다…지역 '의사 부족' 해소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당정, 의대 정원 확대 합의

3000명 10년간 지역의사 배치
1000명은 역학조사관·과학자로

한국 1000명당 의사 2.4명
OECD 평균의 70% 수준 불과

"의사 반발에도 정원확대 물꼬 터
일부 인기과·대도시 쏠림 해소"

정부와 여당이 한시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한 것은 국내 의료 수급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울 등 대도시의 돈 잘 버는 진료과로 의사가 몰리면서 지역 중소병원은 월급을 두 배 올려줘도 의사를 구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해왔다. 고심 끝에 10년간 4000명을 늘리기로 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출된 의료인력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지 못하면 쏠림현상이 심해질 수 있어서다.

지역불균형 해소 ‘제2의 이국종’ 키운다
국내 의사는 12만6724명, 이들 중 10만5628명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3만359명)과 경기(2만210명)에 절반에 가까운 48.8%가 집중됐다. 보건복지부는 2022~2031학년도에 일시적으로 확대하는 의대 정원의 75%인 3000명을 10년간 지역에 의무 배치하는 의사로 키울 계획이다. 지역의사제도다. 의사가 부족한 지역, 의대 정원이 50명 미만인 소규모 의대 등에 정원을 늘려 이들을 교육한다.

지역의사로 선발한 의대생은 6년간 전액 장학금을 받는다. 의사가 된 뒤 전공을 선택할 때는 내과, 일반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진료과를 선택해야 한다. 10년간 지역 의무 근무 조항을 지키지 않으면 장학금을 환수하고 의사 면허도 취소한다.

나머지 1000명 중 500명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와 같은 중증외상 전문의, 역학조사관 등으로 키운다. 바이오·의료기기·화장품 등의 산업에 종사하는 의사과학자도 500명 양성한다. 이를 통해 의사 쏠림 문제를 해결하고 바이오헬스산업을 육성하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필요성이 커진 비대면 진료를 20%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
역학조사관·바이오 의학자 등 육성
국내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5년째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의대 6년 과정을 마친 뒤 면허를 따야 활동할 수 있는 의사 수도 그에 맞춰 증가폭이 고정됐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의사들의 반발을 넘지 못해서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국내 지역·필수 의료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 의사 수 확대를 결정하는 계기가 됐다.

질병관리본부에 근무하는 의사 역학조사관은 5명뿐이다. 정원인 13명에 한참 못 미친다. 13개 시·도의 의사 역학조사관 정원은 23명이다. 이들 중 17명은 군 복무 중인 공중보건의다. 군 복무 기간이 끝나면 인력이 바뀌게 돼 역학조사관을 키우는 데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계속돼온 배경이다.

대도시로의 의사 쏠림은 고질적 문제다.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세종을 제외하고 의사 부족이 가장 심한 경북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1.4명이다. 서울(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경북 지역 의대를 졸업한 뒤 해당 지역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10.1%에 불과하다.

국내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는 2.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명의 71%에 불과하다. 홍윤철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장(예방의학과 전문의)팀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사의 상대 노동량은 OECD 평균의 3.37배다. 지금 정원을 그대로 유지하면 2054년 부족한 의사는 5만5260명에 이른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외래 진료 수요가 2043년 1.24배, 입원 수요는 2059년 2.56배까지 치솟기 때문이다.
“지역 쏠림 막을 추가 대책 필요”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한계도 있다. 지역 할당 의사를 뽑아도 10년 의무근무 기간이 끝난 뒤 이들이 계속 해당 지역에서 일하도록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필수분야와 역학조사관, 외상 의사, 제약·바이오업계 종사 의사를 늘리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지금보다 전문의를 많이 배출해 이들이 해당 분야에 종사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국내 의료법상 전공과 다른 분야에 종사해도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결국 피부·성형 등 돈 되는 진료과에 의사들이 쏠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 단장은 “의대 정원 확대의 첫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지만 배출된 인력이 잘 자리잡도록 돕지 않으면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역학조사관 등 특수분야, 바이오메디컬 등 의과학 분야 인력은 이들을 배출하는 학교에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답을 찾을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마다 역학조사관과 의과학분야 의사 배출 실적을 평가해 부진한 곳은 정원을 줄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4.24(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