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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행정수도론…부동산 포기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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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행정수도론…부동산 포기 선언이다

여권이 느닷없이 ‘전면적 행정수도 이전’을 들고 나온 것은 사실상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단이 없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출을 조이고 세금을 때리고 공급확대 방안을 거듭 밝혀도 시장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정부는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능력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타이밍도 너무 늦었구요. 이제 와서 방향을 틀기엔 너무 먼 길을 오기도 했습니다.

부동산 문제 보다는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조리 세종시로 보내자는 여권의 방향 전환이 더 걱정스럽습니다. 민주당은 집값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토균형 발전에 방점이 찍힌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태년 원내대표를 필두로 이낙연, 김부겸 등의 당권주자들이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이 ‘지역 균형발전’이나 ‘행정수도 완성’을 언급하고 나선 것은 작금의 부동산 대란이 정책 실패보다는 지역간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대단히 위험한 진단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만으로 서울 집값이 폭등한 것은 아닙니다. 세종시라는 조그만 지역에 국가 컨트롤타워를 통째로 몰아넣는다고 그 격차가 해소될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청와대 직원이나 국회의원들, 보좌진들 가운데 서울 집 팔고 세종시에 둥지를 틀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청와대는 5년, 국회의원은 4년짜리 한시적 직장 아닙니까. 지역 국회의원들 대부분이 서울에 집 놔두고 의정활동을 하는 판에 누가 서울 집을 팔겠습니까.


균형발전 논리는 허구다

그래도 ‘행정수도 완성’이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숙원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지금부터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균형 발전은 참 좋은 말입니다. 반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균형 성장과 불균형 성장을 놓고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 것이냐고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전자를 지목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균형 성장은 허구입니다. 사람과 정보와 지식은 모여야 시너지를 냅니다. 도시와 농촌을 비교해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가별로 도시의 성장경로와 정도가 다르고 도시별 특성이 뚜렷한 상황에서 모든 지역을 균등한 상태에 가깝게 유지하자는 것은 실현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리에도 맞지 않습니다. 울산에 완성차업체와 대형 조선업체가 들어서자 부품업체들은 그 주변인 부산 대구 경주 마산 창원 등에 폭넓게 포진했습니다. 지금 와서 이들 지역에 완성차 조립라인과 건조 도크를 쪼개서 배치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모든 부품업체들이 울산에 몰려들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효율성 때문입니다.

격차에 대한 허망한 말씀 하나 드릴까요. 예를 들어 서울과 경기도간 격차가 심하다고 가정하고 현재 행정구역대로 지역 생산력과 소득 통계를 낸다고 가정합시다. 갑자기 서울이 외곽으로 팽창해 서울 행정구역이 늘고 경기도가 줄면 그때 달라지는 통계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두 지역간 격차가 늘었다 또는 줄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 경계선만 바꾸면 달라지는 지역간 격차를 숫자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경제 성장이나 사회 발전은 필연적으로 지역간 불균형을 야기하기 마련입니다. 산업화된 도시는 시골로부터 인력을 흡수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시골은 생산성이 낮은 인력들을 도시로 보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전 세계 모든 대도시와 인근 지역들이 이런 경로를 걸어왔습니다. 굳이 균형발전이라는 단어에 맞는 사례가 있다면 이런 것일테죠.

앞서 제가 ‘균형발전은 허구다’라고 말씀드린 것은 균형발전이 문명적으로, 도시생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IT업체들이 밀집한 판교를 보십시오. 이곳에 넘쳐나는 인재와 지식과 기술을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경상도로, 전라도로 흩어버리면 판교밸리의 지속성은 그대로 사라지고 말겁니다.


세종시엔 작은 혜택, 나라엔 천문학적 비용

도시는 본질적으로 그곳에 모여든 자원들의 정보를 처리하는 공간이므로 언제나 사회의 중심이 됩니다. 그리고 도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도시로 다시 사람과 정보가 모여듭니다. 통상 한 나라의 수도입니다. 수도는 구성원들이 경제적-사회적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주거 뿐만 아니라 업무-생활시설 같은 인프라를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갑니다. 어느 국가도, 어떤 문명도 이런 과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거나 국민들의 합의 아래, 수도 기능을 분산하고 중요한 산업체나 대학, 병원 등을 여러 지역으로 흩어버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생존에 유리하거나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모여든 도시의 자원들을 인위적으로 분산할 경우 감당해야 할 비용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전면적 행정수도 이전은 세종시와 충청 인근에 추가적 이득을 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수도 이전으로 나라 전체가 볼 손실은 엄청나게 큽니다.

당장 현재 세종시에 자리잡고 있는 정부의 비효율성을 따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부작용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행정수도 이전은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된 것입니다.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명분은 너무나 달콤한 것이었기에 많은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역균형’ 자체는 억지로 가능할지 몰라도 ‘균형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영구적 수도라는 가정 아래 첨단 산업과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서울이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수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조건에 적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삶을 흔들 것입니다. 그 비용은 세종시로 옮겨가는 공공기관의 비효율을 압도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과거 헌법재판소도 바로 이런 연유로 세종시의 행정수도화를 막은 겁니다. A1,2,3,35면에 다시 요동치는 부동산 시장과 행정 수도 이전을 둘러싼 정치권 움직임 등을 종합적으로 짚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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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조일훈

(끝)

오늘의 신문 - 2024.04.20(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