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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교수에 노벨상 안긴 항암제 '옵디보'…'천덕꾸러기'에서 兆단위 매출 효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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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락근 지식사회부 기자)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혼조 다스쿠 일본 교토대 교수(76·사진 가운데)의 연구업적이 더욱 빛났던 배경에는 ‘실사구시’가 있었습니다. 이론에 그치지 않고 실제 암 치료제로 개발돼 많은 환자들의 목숨을 구한 건데요. 혼조 교수는 “기초연구로 시작해 실제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개발된 항암제 ‘옵디보’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1992년 그는 옵디보의 핵심 타깃이 된 ‘PD-1’이란 분자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지만 22년이 지나고 나서야 신약으로 출시됐으니 말이죠.

PD-1은 면역활동을 억제하는 분자로 첫 발견 이후 7년이 지난 1999년 그 원리가 규명됐습니다. 교토대와의 산학협력을 함께 해오던 오노약품공업은 이 원리를 역이용할 경우 면역세포가 PD-1의 방해 없이 정상적으로 작동해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항암제 개발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오노약품공업은 일본 내에서 매출액 기준 10위권 밖의 중견제약사로 항암제 같은 굵직한 신약을 개발할 능력도, 경험도 없었습니다. 기존 제품군도 매출혈당강하제, 호흡기질환 치료제 등 뿐이었죠. 이 때문에 공동개발을 함께 할 제약사를 백방으로 찾아다녔습니다.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지금은 면역항암제가 항암제의 ‘대세’가 됐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실제 효능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면역력을 높여 암을 치료한다’는 각종 유사의학들이 판을 치던 때라 혼조 교수의 연구성과도 비슷한 취급을 받았죠.

그렇게 몇 년이 흘렀고, 2005년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바이오벤처기업 ‘메다렉스’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메다렉스 역시 면역항암제를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조 교수의 연구성과의 진가를 알아본 것이었는데요. 메다렉스가 당시 개발중이던 면역항암제는 올해 혼조 교수와 공동으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제임스 앨리슨 미국 MD앤더슨암센터 면역학과 교수(70)의 연구성과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201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시판 승인을 받으며 면역항암제로서는 세계 최초로 세상에 나온 ‘여보이’가 바로 메다렉스의 작품이었죠.

어렵사리 2006년 첫 임상시험을 시작한 옵디보는 이후 탄탄대로를 달렸습니다. 2009년 다국적 제약사인 BMS가 메다렉스를 24억달러에 인수하면서 제품 개발에 더욱 속도가 붙었습니다. 임상시험에 필요한 노하우와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입니다.

2014년 옵디보는 일본과 미국에서 판매허가를 받으며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오노약품공업 직원들 사이에서도 ‘불가능’이라고 했던 천덕꾸러기는 단숨에 ‘조(兆)’ 단위 매출을 올리는 효자 아이템이 됐습니다. 출시 이듬해 매출은 2배 이상 뛰었죠. 오노약품공업의 올해 예상 매출 2770억엔(약 2조7200억원) 가운데 절반 가량(1300억엔)은 옵디보를 팔아서 올린 것입니다. 혼조 교수가 연구실에서 “유레카”를 외쳤던 1992년의 성과가 26년이 지난 지금 막대한 수익과 함께 수많은 암환자들을 치료하고 노벨상 수상의 영예로 이어진 것이죠.

정년이 늘어나면서 젊은 연구자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었다며 그들을 위한 연구기금을 만들겠다는 혼조 교수. 2일 일본 교토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벨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 뿐만 아니라 옵디보 판매로부터 얻는 로열티를 바탕으로 젊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펀드를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는데요. 기초연구로 시작해 블록버스터급 성공을 거둔 그처럼 제2, 제3의 혼조 교수가 나올 수 있을까요? (끝)/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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