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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의 뒤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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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휘 정치부 기자)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현재도 진행중인 논쟁의 대상이다. 학계에서조차 이견이 끊이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6·13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에서도 이념 좌표 재설정의 물결이 거세다. 흥미로운 현상은 좌·우를 막론하고 ‘진보’라는 이미지를 고수하려한다는 점이다. 보수는 ‘팽(烹)’당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외면받고 있다.

“보수라는 단어, 왠만하면 쓰지 맙시다”. 자유한국당 중진의원의 말이다. “낡고 오래된 느낌에다 기득권 세력이라는 인상이 강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방선거 참패의 원인을 홍준표 전 대표의 ‘수구 보수’ 이념으로 돌리고 있는 한국당 내에선 ‘보수’를 언급할 때 반드시 개혁과 혁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바른미래당은 아예 당의 이념적 지향성을 ‘합리적 진보’라고 명명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바른미래당을 개혁보수 세력으로 규정하려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우리가 갈 길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진보=좌익·용공’이란 도식이 횡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거꾸로 요즘엔 ‘보수=우익·수구’라는 ‘프레임(틀)’이 굳어진 모양새다. 조금 더 단순화하자면 보수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사실 ‘진보’는 정치 이념이라기보다는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을 것’이란 인류의 공통적 신념에 가깝다.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이성과 과학의 힘을 빌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진보주의의 핵심이다. 유독 한국에서만 ‘색깔론’의 희생양이 되면서 의미가 왜곡됐다. 요즘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보를 향한 ‘러브콜’은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라는 진보의 본래 의미가 복원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쳇말로 ‘진보적 보수’라는 말도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상대적으로 보수주의의 가치는 지나치게 줄어들고, 위축되고 있다. 기왕의 것들을 손에서 놓치 않으려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완고함으로 해석되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보수에 대한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보수주의의 ‘원조’격인 영국의 정치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그의 저서 「성찰」을 통해 보수가 가장 경계하는 바를 이렇게 요약했다. ‘우민(愚民)의 광기와 이를 이용한 급진주의 정치’라고 말이다.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온고지신(옛것을 지키고 새것을 익힌다)의 정신에 가깝다.

진보의 확장과 보수의 축소 현상은 자칫 국가주의와 중우정치가 날개를 펼칠 공간을 만들 여지가 크다. 위임받은 권력에 과도한 힘이 실리고, 위정자들은 스스로의 신념에 도취해 진실은 흑과 백 둘 중의 하나라고 강변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제대로 된 한국의 ‘보수당’이 등장해야 할 이유다. (끝) /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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