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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김종필 전 총리)의 사부곡(思婦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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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평생을 자애와 관용으로 순응하면서 내조해 준 당신에게 끝없는 경애를 드립니다”

23일 향년 92세로 별세한 김종필 전 총리(JP)가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에게 보낸 사부곡이다. JP는 생전에도 애처가로 유명했다. 그는 지난 2015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를 지극정성으로 간병하며, 여러 인터뷰를 통해 부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표현해왔다.JP는 평소 현충원에 묻히기를 거부해왔는데 그 이유는 부인과 나란히 묻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김종필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고인이 생전에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다”며 “먼저 돌아가신 박영옥 여사와 같이 충남 부여 가족묘원에 묻히겠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JP가 세상에 남긴 유언집 ‘남아있는 그대들에게’에서도 부인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전했다.

그는 “저는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팔과 다리가 불편했지만 매일 휠체어에 앉아서나마 아내의 병상을 지켰다”며 “딸 예리가 자꾸 집에 가라고 했지만 저는 아내 곁을 떠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아내를 떠나 보냈던 당시 심경도 밝혔다. “2015년 2월 15일 결혼 64주년을 함께 보내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저는 아내의 임종이 다가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물리고 아내와 단둘이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마지막 입맞춤을 했고, 선물로 64년 전 아내에게 선물한 결혼반지를 목걸이에 매달아 목에 걸어 줬습니다. 아내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여보, 멀지 않은 장래에 갈 테니까 외로워 말고 잘 쉬어요’였습니다. 아내가 마지막 눈을 감으며 내 곁을 떠났을 때, 저는 그야말로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책에는 부침(浮沈)많은 정치를 했던 그를 ‘그림자 내조’했던 부인을 그리워하는 대목이 눈에 뛴다.

“아내는 정치를 하며 여러 번 부침(浮沈)을 겪은 제 곁에서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한결같이 보살피고 머물면서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 그림자 내조를 해 왔습니다. 시중에서 들은 이야기나 정치 현안, 민심의 소재를 제게 전달해 주는 역할도 기꺼이 했습니다. 정치인의 아내로서 그녀는 생전 ‘프랑스 드골 대통령의 부인 이본느 여사처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내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정말로 매스컴에 크게 오르내리지 않으면서 조용히 저를 도왔습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늘 사랑하고 위했습니다. 저를 평가해 달라는 매스컴의 요청에 ‘남편을 하늘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점수를 매긴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생일 때마다 마음을 담아 직접 손 글씨로 축하 편지를 썼다고 했다. JP는 “ 말로도 축하를 하고 선물을 사 주기도 했지만, 한 획 한 획 정성을 담아 편지를 써 왔다”며 “아내는 제가 준 편지들을 버리지 않고 표구를 해서 모아 뒀다“고 전했다. 이어 ”금혼식 때 쓴 것이며 생일 때 쓴 것들까지 한 장 한 장 표구해 둔 편지들을 열어 보며 저는 또 한 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끝) /mrh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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