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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난민 때문에 범죄 늘었다는 트럼프 주장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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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국제부 기자) “독일이 난민을 받아들인 이후 범죄가 10% 늘었다. 다른 나라들은 더 심각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트위터에 올린 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 넘어오는 난민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주장이죠. 자신의 반(反) 이민 정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난민이 유럽의 문화를 폭력적으로 바꿨다”고도 했습니다.

난민이 유입돼 범죄가 늘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사실일까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을 즉각 반박했습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내무장관이 제시한 범죄 통계가 답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말한 범죄 통계는 호르스트 제호퍼 독일 내무장관이 최근 발표한 내용을 가리킵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범죄는 전년보다 9.6% 줄었습니다. 비(非) 독일인이 저지른 범죄도 22.8% 줄어 난민 범죄가 상당 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무슨 근거로 독일의 범죄가 늘었다고 한 것일까요. 온라인 매체 복스는 지난 1월 독일의 한 연구기관이 발표한 보고서를 트럼프 대통령이 봤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독일의 범죄가 전년보다 10% 정도 증가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또 증가한 범죄의 90% 정도가 젊은 나이의 난민 남성들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이죠.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엔 다시 범죄가 줄었다는 최신 통계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독일의 범죄 발생이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반난민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난민이 저지르는 범죄는 빈도는 낮더라도 크게 부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로 중동과 북아프리카 출신인 난민들과 독일인들 간의 문화적 차이도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난민 문제 때문에 독일 연립정부는 붕괴 위기까지 맞고 있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교민주당의 연정 파트너인 기독교사회당이 반난민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죠.

독일뿐만이 아닙니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엔 ‘난민 추방’을 내세운 정당이 집권했고, ‘복지 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 덴마크에서도 극우 정당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얼마 전 제주도에 예멘 난민 500여명이 들어와 이들을 받아들일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합니다.

이와 관련해 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공식 통계에 나타난 외국인 범죄의 발생 동향 및 특성’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외국인의 인구 10만명당 범죄 발생률은 내국인의 절반 이하입니다. 외국인이 범죄를 훨씬 적게 저지른다는 얘기죠.

그럼에도 난민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앞섭니다. 리얼미터가 지난 20일 전국 성인 5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49.1%로 찬성한다는 응답 39.0%보다 높았습니다.

난민들은 대부분 전쟁이나 내전, 극심한 경제 불황 등을 피해 온 사람들입니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선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야 하겠지만 인종적·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과 반감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난민의 정착을 돕기 위한 예산도 필요합니다.

한국보다 훨씬 부유하고 민주주의가 성숙한 유럽 국가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난민 문제가 얼마나 복잡하고 민감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유럽을 휩쓸고 있는 난민 문제가 이제 한국에도 현실적인 과제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끝) /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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