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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현자'가 잠 못 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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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경제부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해 11월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6년 5개월 만에 통화정책 방향을 틀었지만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덧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를 향해 가고 있지만 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기보단 발목을 잡는 안팎의 경제 이슈가 연일 불거지고 있습니다.

일단 1일 발표된 올 1분기 경제성장률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날 1분기 성장률 잠정치(1.0%)가 발표됐는데 지난 4월 발표됐던 속보치(1.0%)보다 하향 조정됐습니다. 건설·설비투자 증가율이 크게 꺾인 탓이죠. 1분기 1.0% 성장이 올해 3% 성장 경로를 크게 훼손한다고 볼 순 없지만 예상보다 흐름이 둔화됐다는 점에서 금리 인상을 위한 여건이 조성됐다는 해석은 어려울 듯 합니다.

국내에선 경기 국면 판단을 두고 여전히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는지, 여전히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각종 경제정책과 통화정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경기 논쟁이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외 여건도 심상치 않습니다. 무섭게 치솟던 국제유가 급등세가 잠잠해지는가 했더니 이번엔 이탈리아발(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금융위기 우려가 증폭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정치 불확실성으로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고 미국 달러화 강세가 심화하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늦춰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유가 급등세가 잦아들면서 Fed의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완만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유가 상승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가 상승세가 멈추면 미국의 물가 상승세도 축소되고, 가파른 금리 인상 전망의 근거도 약해지게 됩니다.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면 한미 금리 역전 현상 등으로 인한 한은의 금리 인상 압력도 줄게 됩니다. 물가나 경기에서 개선 신호가 좀 더 뚜렷해질 때까지 금리 인상 시점을 지연시킬 수 있는 일종의 여유가 생기는 셈이죠. 금리 인상을 두고 한은의 신중한 태도가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올 초 5월로 점쳐졌던 추가 금리 인상 시점은 최근엔 오는 7월이나 10월로 다시 전망되고 있답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공식적으로 한은의 금리 인상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최근 발표한 ‘2018년 상반기 경제 전망’을 통해 물가가 정책 목표치(2%)를 한참 밑돌고 있는데다 경기 회복 흐름이 금리 인상이 필요할 정도까지 과열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죠.

또 미국과 금리 격차가 커지더라도 대규모 자금이 유출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국내 상황에 따라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할 여건이라는 설명이었죠. 사실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줄곧 미국의 통화정책보다 국내 경기 상황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주요 변수라는 점을 강조해왔고요.

여기에 최근 나온 흥미로운 주장도 눈에 띕니다. 임혜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한은, 선제적 대응이 최선은 아니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미국과 금리 격차 확대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를 덜고 저금리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 한은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는데 말입니다.

임 연구원은 금리를 인상하면 가계부채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시장금리마저 상승하면 원리금 상환 부담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죠.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져도 소득이 증가하면 실질 부담이 완화되겠지만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의 소득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으니 이도 쉽지 않다는 겁니다.

임 연구원은 “지금은 가계부채 부담 확대를 제어하고 재정정책을 통한 소득증가에 주력해야 할 시점”이라며 “수출 증가율 둔화, 고용 부진 등에 따른 성장세 약화를 보완하기 위해 소득 증가와 내수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한미 금리 역전도 잠재적인 리스크지만 안정적인 대외건전성 지표를 봤을 때 당분간 감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다음 금리 결정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7월 12일 열립니다. ‘7인의 현자’(7명의 금통위원)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듯 합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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