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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막말 앞세워 대선 여론조사 1위, '브라질의 트럼프' 보우소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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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호 국제부 기자) “여자들은 돈을 적게 벌어야 한다. 임신을 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낮았던 수백년 전 어느 시대의 얘기로 들립니다. 아니면 어느 몰지각한 사람이 내뱉은 말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 나라의 대선주자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심지어 그 사람은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입니다. 그는 브라질 사회자유당 소속으로 오는 10월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연방 하원 의원입니다.

1955년생 이탈리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보우소나루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엔 군인이었습니다. 1977년 브라질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에 복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8년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부터입니다. 1990년엔 연방 하원 의원으로 당선됐습니다.

보우소나루는 지금까지 세 차례 결혼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요. 세번째이자 현재 부인을 한때 자신의 의원 비서로 고용했습니다. 그러면서 불과 2년 만에 부인을 고속 승진시켜 연봉을 3배 넘게 올려줬다고 하는군요. 브라질 대법원이 친인척을 비서로 채용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한 뒤 부인을 해고했다고 합니다.

보우소나루는 예사롭지 않은 이념 성향으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를 일컬어 ‘막말 극우 정치인(tough-talking far-right politician)’이라고 했습니다. ‘막말’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섞어놓은 사람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보우소나루는 여성에 대해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는 2014년 다른 당의 여성 의원 마리아 두 로사리우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한 혐의로 법원에서 벌금 1만헤알(약 293만원)을 선고받았는데요. 당시 그는 로사리우 의원에게 “나는 절대 당신을 강간하지 않아. 왜냐하면 당신은 그럴 가치가 없어. 너무 못생겼어”라고 말했습니다.

동성애와 외국인에 대한 혐오도 여과없이 드러냅니다. 그는 “나는 동성애자 아들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하는가 하면 “외국인과 비정부기구(NGO)를 추방하겠다”고 말합니다.

과거 브라질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냅니다. 브라질은 1964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20여년간 독재정권이 집권했는데요. “난 독재정권에 찬성한다”, “독재정권은 없었다. 강도와 부랑자에게만 독재정권이었다”, “독재정권의 실수는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지 않은 것이다” 등이 독재에 대한 보우소나루의 소신입니다.

이쯤 되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선 후보로 나왔을까 싶은데요. 대선을 5개월 앞둔 현재 놀랍게도 그는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습니다. 브라질 여론조사 업체 MDA가 지난 14일 발표한 조사에서 보우소나루는 18.3%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 후보(11.2%)와 격차도 꽤 큽니다.

다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을 후보에 포함한 조사에선 룰라 전 대통령이 32.4%로 1위, 보우소나루가 16.7%로 2위였는데요. 룰라 전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지난달 수감돼 현재로선 대선 출마 가능성이 낮습니다.

보우소나루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범죄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꼽힙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겠다고 공언하고 있는데요. 지난해 브라질에선 6만명이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전세계 살인의 13%가 브라질에서 일어났다고 하니 심각성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브라질 국민의 80% 이상이 살해 공포를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미성년자도 강력 범죄를 저지르면 성인과 같은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우소나루의 단호한 태도에 브라질 국민들의 마음이 끌리고 있는 것이죠.

경제적 어려움도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됩니다. 브라질은 2015~2016년 연속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습니다. 실업률은 8% 안팎에서 13~14%로 높아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정치권에선 부패 사건이 연이어 터졌습니다. 경제는 어려운데 범죄는 늘어나고 정치인들의 부패는 끊이지 않으면서 브라질 국민들이 그동안 집권했던 중도와 좌파 성향 정당에 등을 돌리고 보우소나루에 주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우소나루의 주된 지지층이 20~30대라는 점도 눈에 띕니다. 독재를 해도 좋으니 범죄와 실업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젊은이들의 요구가 보우소나루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보우소나루도 젊은층을 겨냥해 소셜 미디어를 선거운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의 페이스북 팔로워는 540만명에 이릅니다.

국제기구와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차기 브라질 대통령이 재정개혁 등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보우소나루는 자신이 경제 전문가는 아니라는 점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경제 전문가를 참모로 두겠다면서요. 물론 대통령 본인이 반드시 경제 전문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불안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월 대선을 전후로 브라질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노무라증권은 “개혁을 밀어붙일 준비가 되지 않은 정부가 탄생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브라질 국민들은 5개월 후 어떤 선택을 할까요. (끝) /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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