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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스마트항만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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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영 경제부 기자) 스마트항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스마트’한 자동화 기술을 도입한 항구라는 뜻입니다.

배에서 유연탄을 내리는 하역 작업을 예로 들어보죠. 유연탄을 실은 배가 항구로 들어오면 우선 기계로 하역작업을 시작합니다. 80%정도 작업이 진행되고 나면 본격적으로 사람이 투입됩니다. 연탄을 싣는 공간의 벽이나 계단에 붙은 연탄을 알뜰하게 떼어내 배에서 내리기 위해서죠. 수고스러울 뿐만 아니라 작업자가 위험에 처할 때도 많습니다. 스마트항만이 구축되면 이같은 작업이 완전히 자동화됩니다. 작업 속도도 훨씬 빨라지죠.

세계 주요 항구들은 스마트항만 구축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항구 작업 효율을 높여 시간이 곧 돈인 선박들을 끌어들인다는 계산입니다. 선박이 항구에 정박하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요. 기상천외한 관련 산업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요즘 한국 항구에서는 스마트폰 강국답게 외국 선원들에게 최신 스마트폰을 개통해주는 심부름센터가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다고 하네요.

한국 정부도 혁신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스마트항만 도입을 야심차게 추진 중입니다. 부산항이 그 첫 번째 주자입니다. 지난 3월 부산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도 “항만자동화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추세”라고 말했지요.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도 의욕에 차 있습니다. 민간 전문가 등이 포함된 스마트항만 조사단을 꾸린 게 대표적입니다. 조사단은 오는 16일부터 사흘간 상하이를 방문해 작년 12월 개장한 상하이 양산항 4단계 터미널을 견학하기로 했습니다. 상하이 양산항 4단계 터미널은 배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는 하역작업부터 트럭에 컨테이너를 싣고 게이트를 통과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자동화된 터미널입니다. 칭다오항, 셔먼항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개장된 완전자동화 터미널이지요.

그런데 이 조사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원래 조사단에 참가하기로 한 부산항만노조 관계자 4명이 출발 직전 갑작스레 불참을 선언한 겁니다. 업계 관계들은 일정 중 글로벌 자동화장비 업체인 ZPMC 견학 일정이 문제였다고 지적합니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노동자들의 대표가 자동화 시설을 견학하는 건 부담스럽다’는 얘깁니다.

사실 스마트항만은 4차산업 혁명의 명암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스마트항만이 도입돼 자동화가 진행되면 기존 하역 작업 등 단순 노무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구에 상주하는 IT관리인력 등 첨단 산업 일자리는 더 늘게 되지요. 정부는 스마트항만 도입으로 줄어드는 일자리보다 늘어나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부산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는 공염불로 들리겠지만요.

자동화를 반대하는 부산항만노조조차 항만자동화가 피할 수 없는 추세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한국 항구만 다른 나라에 뒤쳐져 외면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해수부는 기존 부산항 근로자들에게 직종 전환을 위한 재교육 등 대안을 철저히 마련한다는 계획입니다. 수 천명에 이르는 가장들의 일자리가 걸린 만큼, 단순한 해결책보다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장조사 불참을 택한 부산항만 노조의 선택이 더 아쉽습니다. 노조로서의 자존심을 세우기보다는 스마트항만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합리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게 노조원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더 나은 선택이었을텐데요. (끝) /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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