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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의중과 정반대결론 내린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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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필 정치부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16일 내린 한 유권해석을 두고 정치권이 연일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임기 말 남은 정치후원금을 국고 반납하지 않고 그 중 일부인 5000만원을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의원 연구모임인 ‘더좋은미래’에 특별기금으로 납부한 것을 선관위가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김 전 원장은 이날 선관위 결정 직후 30여분만에 사의를 표명해야 했습니다.

지난 12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김 전 원장에 대한 공개검증 및 재신임 차원에서 선관위에 공직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의뢰했습니다.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말하자면 청와대와 김 전 원장 측이 설정한 ‘최후의 배수진’이었던 셈입니다.

선관위의 이 같은 판단은 권력의 최고정점에 있는 청와대의 의중을 정면으로 거슬렀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청와대와 야당이 맞서는 가운데 ‘끼인 신세’가 된 선관위가 <해석권한 없음> 등의 의견을 내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것으로 예측됐지만, 막상 정치적으로 예민한 현안에 대해 과감한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입니다.

선관위가 ‘소신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선관위원 구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중앙선관위원은 대통령 임명 몫 3명, 국회 선출 몫 3명, 대법원장 지명 몫 3명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됩니다. 이 가운데 위원장은 호선으로 선출되며 관례상 주로 대법관 출신이 맡아왔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원 구성을 보면 정부기관이나 권력자가 절대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구조”라며 “선거에서 심판 역할을 해야 하는 특성상 엄정한 정치적 중립이 실현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선관위 결정사항을 두고 더좋은미래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17일 반박 기자회견을 여는 등 후유증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2년 전인 2016년 3월 김기식 전 의원이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바 있고 총선 이후 회비를 납부한 점, 선관위에 회계보고까지 정상적으로 한 점 등을 감안하면 (당시 법 위반을 문제삼지 않은) 선관위가 직무유기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영수증 하나까지도 철저히 챙기는 선관위 업무방식 스타일 상 당시 이 사안을 그냥 넘어갔을 리 없다”며 “야당 정치공세로 인해 사안이 불거지자 이제서야 위법 해석을 내리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정치권 관계자도 “이번 결정으로 선관위가 당시의 부실 회계감사를 자인하는 꼴이 되버린 셈이어서 내부적으로 고민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논란의 당사자인 김기식 전 원장도 같은날 페이스북에서 “저에 대해 제기된 비판 중엔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며 “법률적 다툼과는 별개로 이를 정치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해 수용은 하지만 선관위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선관위 해석을 두고 정치권이 이런저런 평가를 내놓는 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대결이 끝나면 ‘심판’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은 정치 현장이든 스포츠 경기 현장이든 지켜야 하는 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끝) /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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